# 죽음에 흔들리는 형제 이야기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이 던진 영화적 충격은 현재까지도 그대로 남아있다. 세계 영화 곳곳에서 그 충격들을 여전히 감지할 수 있다.
‘라쇼몽’이 하고자 했던 말은 사실 ‘넌 이 말을 믿니?’다. 진실과 허구의 애매모호한 경계에 서있는 인간은 진실과 허구 모두를 믿지 못한다.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는 것 모두가 환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주체를 혼란시킨다. 이제 남은 것은 언어가 만들어내는 진실뿐이다.
저 너머에 존재했던 진실은 완전히 사라지고 과거 진실에 도달하는 계단 정도로만 여겨졌던 언어가 예술과 삶의 전면에 맨몸을 드러냈다. 이제는 언어와 이야기만이 진실이다. 주체는 마치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들처럼 가상공간에 살아간다. 그 가상공간은 바로 언어로 이뤄져 있다.
이야기가 약간 초점에서 빗나간 것 같지만 기자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인간은 불확실성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무엇을 믿고 의심할 것인지 확실히 결론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신은 이제 한물 갔다. 그는 아쉽게도 인간에게 더 이상 확실한 것을 가르쳐주지 못한다. 스스로 확실하다고 믿는 것조차 이제는 믿을 수 없는 것이 됐다.
가치나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윤리적 판단 기준뿐만 아니라 직접 자기가 눈으로 본 사건이나 사물조차도 믿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영화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행동이나 직접 보고 들은 것들을 불신하기 시작했다.
니시카와 미와 감독의 ‘유레루’의 주인공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케루(오다기리 조)는 전문 사진작가다. 다케루는 어머니의 기일을 맞아 1년만에 고향으로 내려온다. 그곳에는 평범하게 아버지의 대를 이어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는 착한 형 미노루(카가와 데루유키)가 있다. 다케루와 형의 사이는 좋은 편이지만 다케루의 어릴 적 여자친구인 치에코가 등장하면서 둘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이 흐른다. 치에코는 지금 형의 주유소에서 일하고 있다.
셋은 어릴 적 추억이 담긴 계곡을 향한다. 계곡 아래에서 사진을 찍고 있던 다케루는 계곡 다리 위에서 형과 함께 있던 치에코가 떨어지는 장면을 목격한다. 다케루는 형이 치에코를 밀어서 떨어뜨렸다고 생각하지만 경찰에게는 치에코가 발을 잘못 디뎌서 떨어졌다고 진술한다. 하지만 미노루는 죄책감에 스스로 경찰을 찾아가 자신이 밀어서 떨어뜨렸다고 고백한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다케루는 순진했던 형의 폭력적이고 간악한 모습을 본다. 그 모습에 충격을 받은 다케루는 마지막 법정 진술에서 형이 치에코를 죽였다고 고백한다.
형은 7년형을 선고받는다. 다케루는 형을 감옥으로 들어가게 했다는 죄책감에 7년 동안 피폐하게 지낸다.
다케루는 형이 출감하기 직전 어릴 때 어머니가 그 계곡에서 찍은 필름을 보고 자신의 기억이 잘못됐음을 깨닫는다.
미노루는 치에코를 죽인 것이 아니라 잡아주려고 했던 것이다. 미노루의 팔뚝에 나있는 긴 손톱자국도 그 때문에 생겼다. 다케루는 출감하는 형을 찾아간다. 형제는 도로를 가운데 두고 서로를 발견한다.
#불확실성은 인간의 본성
영화는 불안한 계곡의 다리 위에 서있다. 인물들의 기억은 모두 제각각이다. 다케루는 형이 죽였다고 믿지만 7년이 지난 후에 기억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는다.
큰아버지인 변호사는 정황을 설명하고 치에코가 발을 헛디뎌 떨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노루는 처음에는 자신이 죽였다고 믿지만 재판이 진행되면서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감옥을 나가서 동생처럼 자유분방하게 살 것이라고 말한다. 재판에서도 자신이 죽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러한 시각과 기억의 불확실성은 안토니오닌의 ‘욕망’을 생각나게 한다.
영화는 제목처럼 흔들린다.(영화 제목인 유레루의 원제는 ‘ゆれる’로 영어로는 ‘sway’다. 흔들리다라는 뜻이다.) 무엇을 믿어야할 지 의심스럽다. 다케루가 마지막에 가서 자신의 기억이 잘못됐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기억 역시 흔들린다.
가정을 보살펴왔던 미노루의 빈자리 때문에 기억이 변했을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흔들리는 다리 위에 서 있는 인간은 불안하다.
영화는 불교의 가르침 중 12연기나 무명을 떠올리게 한다. 감각기관을 통해 형성된 인식을 우리는 믿는다. 이는 고통과 번뇌와 욕망의 시작이지만 우리는 감각기관을 통해 형성된 인식과 기억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또한 세계와 나를 가르는 분별지는 사실 생의 욕구다. 인간은 그 분별지로 살아가며 실수와 반성을 반복한다. 불확실성은 인간이 지닌 본성 중 하나다.
영화는 모호한 기억의 파편을 남기고 끝난다. 미노루가 동생인 타케루를 보며 짓는, 알듯 모를듯한 마지막 미소는 그가 감옥안에서 겪은 일을 대신한다. 불확실함 속에서도 형제와 가족의 사랑은 지속된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동생에 대한 미움의 표시인지 알 수 없다.
표세현 기자 aeneid@jubul.co.kr
http://www.bulgyonews.co.kr/news/1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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