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로 본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세계
고사목 식수 통해 ‘노스텔지어’ 염원
욕망의 거울 깨고 이데아의 세계로
끊임없이 인간본향 좇은 구도여정
올해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가 국내에 소개된 지 10년이 되는 해이다. 54세에 절명한 타르코프스키는 영화성인(聖人)이라고 불릴 정도로 영화세계가 심오하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 속에서 플라톤의 ‘이데아’를 그리워하다 간 영화철학자.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세계를 불교적으로 해석해봤다.
샤르트르는 타르코프스키의 처녀작 《이반의 어린 시절》을 ‘사회주의적 초현실주의’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1929년 브르통이 발표한 ‘초현실주의 제2선언’에 입각해서 해석한 것이다. 《이반의 어린 시절》은 타르코프스키의 다른 작품에 비해 비교적 현실에 기초하고 있고, 그 현실도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아비규환의 현장이어서 이같은 해석을 낳게 했을 것이다. 독일군의 척후병을 하기 위해 날마다 적진에 뛰어드는 이반과 참혹한 전장에서 꿈꾸는 환상세계는 ‘초현실주의 제2선언’이 추구하는 예술성과 공교롭게도 일치한다.
모든 예술가의 처녀작이 그렇듯 《이반의 어린 시절》는 타르코프스키의 영화공식을 완성한 작품이다. 먼저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타르코프스키적 인간’을 창조했다. 타르코프스키적 인간이란 ‘실용적 현실에 적응할 수 없는 인간’이자 ‘삶의 여정 속에서 정신적 차원을 지향하는 인간’이다. 또한, 이 영화는 프루스트의 ‘회상’에 기초한 인류이상에 대한 동경이 담겼다. 영화는 이반이 교수형이 처해지기 직전 꿈을 꾸면서 끝을 맺는다.
타르코프스키가 인류를 구원할 방법으로 선택한 것은 H. 마르쿠제가 역설한 ‘회상’이다. 마르쿠제의 ‘무의시적 기억’은 프루스트의 ‘회상’이나 아우구스티누스의 ‘상기의 힘’과 닿아 있다. 그리고, 불교에서 말하는 ‘본래면목’과 일맥상통한다.
타르코프스키의 두 번째 영화는 러시아 성화상 화가인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일대기를 그린 것이다. 영화 《안드레이 루블료프》는 성속일여(聖俗一如)의 가르침이 담겼다.
안드레이 루블료프가 바라보는 예수는 전지전능한 신이자 역사적 인간이다. 이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디옥 학파간에 벌인 그리스도론 논쟁에 기초한 것으로 ‘신의 세속화에 의한 인간의 신성화’라는 동방정교의 교리와 맞닿아 있다.
살인자가 되어 방황하는 안드레이 루블료프를 구원시킨 것은 어린 소년 보리스카만이다. 소년은 단지 살기 위해 아버지에게서 종을 만드는 법을 전수 받았다고 거짓말을 하고 종을 만들었다. 그런데도 제작한 종은 맑은 소리를 냈다. 소년은 타종 후 인파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주저앉아 흐느낀다. 소년이 루블료프에게 말한다.
“아버지에게 아무 것도 배운 것이 없어요. 그 늙은이는 비밀을 안고 무덤으로 들어갔어요.”
루블료프가 소년을 감싸안고 15년만에 침묵을 깨고 입을 연다.
“가자, 가서 나는 그림을 그리고 너는 종을 만들자.”
루블료프의 말은 성속일여를 통해 평상심을 깨달았다는 징표이다.
타르코프스키의 세 번째 영화 《솔라리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인간의 시간’이 담긴 영화이다. 영화 속에서 시간은 과거와 미래가 언제나 현전한다. 영화 속에서 시간을 재는 것은 마음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이 우리의 마음 안에 현전하게 하는 영혼의 능력을 상기의 힘이라고 명명했는데 이는 시간의 절대좌표계를 부정하는 현대물리학과 일맥상통하고, 불교에서 말하는 ‘일념즉무량겁(一念卽無量劫)’과도 맞닿아있다.
영화의 주인공 크리스는 우주정거장에서 아내인 하리를 만난다. 곡두처럼 나타난 아내에게 크리스는 속죄한다. 프로이트의 자유연상과 같이 상처의 근원으로 돌아가 크리스는 죄의식을 씻는 것이다. 죄의식과 양심이라는 추상명사들이 물질화되어 나타나는 혹성 솔라리스. 그곳은 기실 마음이다. 모든 게 마음에 달렸다. 시간이 그런 것처럼 공간 또한.
타르코프스키의 네 번 째 영화 《거울》은 보다 현상학에 대해 깊이 탐구했다. 영화 속에서 거울은 ‘타자의 욕망’을 표출하는 대상물이다. 때문에 거울은 끊임없이 서로의 욕망만을 비춘다. 그리고 타르코프스키의 거울은 누구든 행복을 욕망하는 자는 욕망을 초극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는다.
타르코프스키의 후기 영화 《노스텔지어》와 《희생》의 인간의 본향을 좇는 구도자의 여정을 그린 영화이다.
물론 노스텔지어는 단순한 육신의 고향이 아니라 영혼의 고향이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플라톤의 ‘꽃의 이데아’를 떠올리게 한다. 생성과 소멸하는 감각세계의 모든 것을 이데아의 그림자라고 봤던 플라톤의 이론은 육근에 의한 것은 모두 부인하고 마음자리를 살폈던 불교와 일맥상통한다.
낯선 이국의 성당에서 고향집을 그리는 여행자. 《노스텔지어》의 마지막 장면은 이탈리아 성당의 한가운데에 러시아 시골농가가 나타난다. 잃어버린 본향에 대한 동경은 눈물겹다.
죽은 나무에 물을 주는 《희생》의 장면은 인상깊다. 그 나무는 타르코프스키의 처녀작 《이반의 어린 시절》에서 이반이 죽어가면서 만진 나무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타르코프스키가 끊임없이 찾아 헤맨 본향이 바로 자연에 닿아 있음을 시사하는 장면이다. 숲에서 새벽별들을 보고 활연대오한 부처님의 연기사상을 타르코프스키도 깨달은 것일까? 작가는 가고 영화만 남았다. 그 해답을 알 수 있는 것은 관객들의 몫일 것이다.
유응오 기자 arche@jubul.co.kr
주간불교 865호 2005년 10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출생 1932년 4월 4일
사망 1986년 12월 28일
출생지 러시아
본명 Andrei Arsenyevich Tarkovsky
데뷔 1962년 영화 이반의 소년시절 연출
수상내역
1962 베네치아국제영화제 그랑프리
1962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1966 칸영화제 그랑프리
1983 칸영화제 최우수감독상
영화작품
희생 (1986), 노스탤지아 (1983), 잠입자 (1979), 거울 (1975), 솔라리스 (1972), 안드레이 루블레프 (1969), 이반의 어린 시절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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