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한파·단속강화 ‘희망’버리고 고국행
‘나 몰라라’ 하는 불교계 태도는 ‘직무유기’
다문화 시대가 도래했지만 다문화 가정 결혼 이주 여성,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경제 한파까지 덥쳐 다문화 가정 및 이주노동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주민 대부분이 느끼는 고통은 대동소이하다. 그들을 끌어안기 위해, 한국사회가 그리고 한국불교가 어떤 역할을 할 수있는 지 이주노동자들과 다문화가정을 꾸리고 이 땅에서 살고 있는 그들에게 한국 사회에서 살면서 느끼는 고통을 직접 들어봤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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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다문화 가정을 꾸리고 사는 이주민노동자가 이주생활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한국에 온지 6년이 됐습니다. 와이프가 온지는 3년 쯤 됐고요. 정권이 바뀐 후 단속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하루하루가 불안합니다. 원치는 않지만 살기 위해서는 정말이지… 범죄자가 될 지도 모르겠어요” 구랍 20일 조계사 지하전통공연장에서 열린 네팔 아동 돕기 공연 관람 차 조계사를 찾은 네팔 출신 미등록이주노동자 라젠리살(Lajen Risal, 31세·남)씨는 자신은 범죄자가 아니라며 ‘불법체류’라는 말을 삼가 달라고 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진짜 죄를 지을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직장은 잃었고 돈은 바닥났는데 자신이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아무대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경기도 남양주 마석동 가구공장에서 일했던 라젠리살씨는 한 달 전 쯤 직장을 잃었다. 경기 마석공단에서 ‘토끼몰이식’으로 이뤄졌던 이주노동자 단속 이후 사장이 퇴사를 시켰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12일 법무부 출입국과 경찰로 구성된 합동단속반이 급습했고, 일하고 있던 이주 노동자들을 개처럼 끌고 갔다. 미등록이주노동자 2백여 명 중 1백 20여명이 붙잡혀 갔다. 욕설은 물론이고 저항을 하면 배든지, 머리든지 마구 때렸다. 라젠리살씨는 그날 다행히도 단속을 피해 잡혀가지는 않았지만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어 앞날이 깜깜하다. 부인이 있지만 그녀 역시 미등록이주민이기 때문에 다른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의 연락을 기다리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또 다른 네팔인인 고레카키(Gore Karki, 33세·남)씨. 그는 라젠리살씨처럼 미등록이주민은 아니다. 하지만 3개월 있으면 라제리살씨처럼 불법체류자가 된다. 3년 비자 만기가 끝나기 때문이다. 고레씨는 걱정이다. 1년 전까지만 해도 네팔 스님이 그를 도와줬지만 지금은 고인이 됐다. 고레씨는 “한국에 살면서 스님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이제는 의지처가 없어졌다”며 “한국에 계신 스님들이 이주민들에게 정신적 귀의처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아들 둘 부인 브와니(Bhawani, 26세) 씨와 함께 산다. 부인도 불법체류이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세계적인 경제 침체로 돈벌이도 예전 같지 않다. 자신과 부인은 둘째 치고 아이들이 걱정이다. 첫째인 루페(Rupeb, 8세·남) 는 초등학교에 다닐 나이지만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교육은 물론 의료지원 혜택 등 아무것도 바랄 수가 없다. 부인이든 자신이든 단속에 걸리면 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이날 만난 이주민들은 대부분이 노동자로 네팔, 미얀마, 스리랑카 국적의 외국인 가정 혹은 다문화 가정을 꾸리고 사는 이주 노동자들이었다. 그들은 대부분이 어눌하게 한국말을 구사했다. 대부분이 5년 넘게 한국에서 살았지만 정상적으로 한국어를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의지할 수 있는 후견자를 필요로 했다. 고민을 들어주고 한국 사회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스님들이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스리랑카 출신 에밀드라(Amildra, 31세·남)씨는 “주변 공장에서 일거리가 크게 줄면서 가장 먼저 해고 당하는 사람이 이주 노동자”라고 했다. “해고된 이주 노동자들 중에는 귀국하는 사람도 있고 재취업을 하려는 사람, 단속에 걸려 가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이 이주 노동자들에게는 가장 어수선한 시기라고 했다.
이렇듯 세계에 불어 닥친 경제 불황으로 불법체류자가 계속해서 늘고 있는 실정이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해고 뒤 2개월 안에 재취업을 하지 못하면 미등록(불법) 체류자가 된다. 에밀드라 씨는 “요즘처럼 일자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해고 외국인 노동자 대부분이 불법체류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며 “불교계가 취업 알선 등의 기회를 제공한다면 이주민노동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16년 전 한국에 이주한 뒤 이주민의 권익 신장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네팔 출신 미누씨는 한국 이주민들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운영하는 이주노동자방송 MWTV(Migrant Worker television)은 전국 각지에서 살고 있는 이주민이 듣는다.
이주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애환과 고초, 한국 남편이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다문화 가정 내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눈다. 그는 “결혼이민여성에 대해 지나치게 ‘한국화’를 강요하는 한국사회의 단일민족사관이 다문화 사회를 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라며 “다르다는 것을 틀렸다고 생각하는 한국 사회의 고정화된 시각이 하루 빨리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한국도 인간이 느끼는 가장 고통스러운 경험인 ‘디아스포라(Diaspora)의 역사를 가지고 있듯 개발도상국 출신 이주민도 2세기 전 이주 한국인들과 같은 처지에 놓인 또 다른 한국의 얼굴들”이라며 “한국 사회 발전에 공헌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고 이주민을 포용하고 감싸달라”고 부탁했다.
한국에서 미얀마의 민주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버마 행동’ 한국 활동가인 소모뚜 씨는 한국 불교의 소극적인 이주민 지원 활동에 대해서 ‘직무유기’라고 나무랐다. 그는 “불교국가 출신 이주민들은 죽을 때까지 부처님 가르침을 따라가고 있는 제자라고 생각하고 산다”며 “한국의 스님이라면 우리들을 부처님에게 귀의할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불교는 같은 불교국가 이주민에 대해서도 방관하고 있다. 반면 개신교는 이주민들을 위해 다양한 지원 사업을 펼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다종교 사회에서 상대방의 종교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종교만을 강요한다”며 “자신의 종교만이 옳다는 독선에서 벗어날 때 종교 간·다문화간 화합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최승현 기자 trollss@jubul.co.kr =============
인터뷰 - 소띠아·우선주 씨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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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에서 장을 보고 있는 소띠아씨 부부. |
포용·배려가 정착 ‘열쇠’
아이들 불교 접할 기회 없어
피부 서로 달라도, 문화 서로 달라도 우리 서로 아름 다음 동지, 혼자 가는 것보다 함께 가면 좋은 걸 함께 사는 이 세상 우리를 위하여.”(스탑 크랙 다운의 노래 ‘와’ 中에서)
미얀마에서 이주해 온 후 이주노동자로 생활하다 지난 2004년 한국인 우선주(26세)씨와 결혼해 다문화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는 소띠아 씨(35세)를 12월 22일 저녁 8시, 그가 사는 부평에서 만났다.
소띠아씨 부부는 2002년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 자원봉사자와 한국어를 배우러 온 외국인노동자 신분으로 첫 만남을 가졌다. 이들 부부는 지난 2003년 고용허가제 도입과 함께 정부의 미등록 근로자 단속에 반대하는 천막 농성장에서 동고동락하며 사랑을 키우게 됐다.
소띠아씨는 현재 컴퓨터 조립회사에 다니며 ‘stopcrackdown’ 이라는 이주노동자들로 결성된 밴드에서 베이시스트로 활동 중이다. 우 씨는 인천 남동공단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현재 소띠아씨는 귀화 신청을 해 놓은 상태다. 제도적인 문제로 불편을 겪어 귀화 신청을 했지만 취득해도 문제다. 미얀마로 이민을 가게 되면 국적을 다시 바꿔야 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 씨는 “한국에서 돈을 모아 몇 년 후 미얀마에 가서 살 계획도 있다”며 “미얀마 사람이지만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어 또다시 외국인 취급을 받게 될까 걱정이다”고 했다.
부부의 자녀인 서연(5세,여)과 현서(3세,남)는 다른 다문화 가정과 달리 엄마 쪽이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말이 서툴다거나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다른 코시안 2세들과는 다르다. 아이들이 취학했을 때 코시안 2세들이 겪게 되는 또래 아이들과의 괴리감 같은 것을 느끼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정체성의 문제라기보다 성격의 문제인 것 같다”며 “엄마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가장 큰 가치는 ‘사랑’이고 그것을 익힌다면 오히려 같은 다문화 가정 아이를 포용할 수 있는 애들로 성장할 것이다”고 말했다. 다만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없는 게 아쉽다고 전했다.
다문화 가정이라는 게 말 그대로 ‘多문화’인데 한국 문화에만 익숙해져 나중에는 남편과 문화적 차이로 충돌하는 일이 생길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했다. 그는 종교 역시 문화의 한 갈래이기 때문에 다문화 사회 속에서는 종교 역시 화합하고 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신교인인 우씨는 “아이들이 남편의 종교인 불교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어 아쉽다”고 토로했다. 소띠아씨는 “미얀마에서는 성장 과정 중 2번 정도 스님들처럼 출가를 한다”며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도 그런 의식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고 털어놨다. 소띠아씨는 “한국스님이 우리 같은 불교국가 출신 다문화 가정 아이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줬으면 좋겠다”며 “불교국가 출신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살고 있는 모든 이주민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져달라”고 부탁했다.
소띠아씨 부부는 예식을 미얀마에 있는 한 교회에서 치렀다. 미얀마는 전통상 국외에서의 결혼을 허용하지 않는다. 자국 내 절이나 교회 등 종교 시설에서 혼례를 올려야 한다. 우씨는 “시댁에서 나를 배려해 예식을 교회에서 치르게 해줬다”며 “상대방의 종교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남편의 가정을 보면서 불교에 대한 애정이 더 커졌다”고 밝혔다. 진정한 사랑은 이해·관용·포용·동화·자기 낮춤에서 온다고.
우 씨는 “이명박 정권 들어 불거진 종교 갈등으로 시끄러웠는데 가정 폭력으로 일그러진 다문화 가정 역시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지 않고 포용하지 않아 생긴다”며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한다면 다문화 가정에서 느끼는 갈등은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조언했다.
최승현 기자 trollss@jubul.co.kr
http://www.bulgyonews.co.kr/news/16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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