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심 통해 일상서 마음 공부
계층 구분 없이 자율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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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은사선방에는 100여 명의 재가불자들이 자율적인 참선수행을 해오고 있다. |
5월 6일, 삼성역에 위치한 봉은사 가는 길은 도시문화의 절정이다. 무역센터, 코엑스, 인터콘티넨탈 호텔, 아셈타워, 그리고 각양각색의 브랜드로 둘러싸인 쇼핑몰은 세계적인 도시 서울의 현재다. 이런 모던한 광경을 지나 횡단보도를 하나 건너면 한국 불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고스란히 담긴 봉은사를 만난다.
794년 신라 원성왕 때 창건된 이래 1551년 선종수사찰(禪宗首寺刹)로 지정돼 승과를 치르며 조선불교 중흥의 산실 역할을 했던 천년 고찰 봉은사. 선종의 대표적인 역할을 해온 봉은사의 맥을 이은 결정체가 있었으니 바로 봉은사 시민선방(선감 돈오스님)이다.
일주문을 거쳐 다래헌 지난 비탈길을 오르면 진달래와 수목들로 살포시 둘러싸인 봉은사 시민선방이 있다. 도심 한가운데 이렇게 고즈늑한 곳이 있을까 하는 의아심이 들 정도로 평온하고도 맑은 기운이 품어져 나오는 곳이다. 그리고 하심과 묵언이라고 주변 곳곳에 붙어 있는 이곳은 벌써 그 기운부터가 심상치 않은 수행처다.
봉은사 시민선방은 99년 본격적인 재가선원으로 시작돼 오전 4시 6시, 오전 9시 11시, 오후 3시 10분과 4시, 오후 7시 10분과 9시까지 하루 4회에 걸쳐 자율정진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하지만 봉은사 시민선방의 유래를 1999년부터라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다. 시민선방이라는 이름이 붙기 전부터 신도들은 쭉 참선수행을 이어 왔기 때문이다.
초창기부터 간화선 수행을 해오고 있는 이묘선씨(60)는 “다래헌이 초가집이었을 때부터 노보살님이 참선을 하고 있었어요. 그러니 시작을 99년이라고 말하면 그분들이 서운해 하실 거에요. 봉은사가 선종사찰인 만큼 오래전부터 신도들이 참선을 통해 부처님의 본성을 찾아가며 수행을 했던 곳”이라며 “봉은사선방이라는 어엿한 간판을 달며 자리를 잡기까지 우리도 많이 옮겨 다녔어요. 다래헌부터 시작해 구교육관, 또 공사 때문에 콘테이너박스에서도 참선을 한 적이 있죠. 지금 선방의 모습을 잡기까지는 근 4년 정도 된 거 같아요. 모두가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공부에 몰입하며 현재까지 온 거죠”라며 시민선방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또 오랜 역사만큼 선감스님의 지도 아래 회원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며 공부하는 곳이기도 하다. 회원들이 직접 청소도 하고 프로그램에 필요한 경비 운영도 하면서 지금까지 자신들의 공간으로 이끌어 온 것이다. 이런 시민선방의 특징은 까다로운 절차 없이 선감스님의 면담만 거친다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는 점이다. 보통의 재가불자를 위한 선방들이 요구하는 신도등록, 불교대졸업, 신도기초교육 등의 절차가 생략된다는 뜻이다.
돈오 선감스님은 “우리 선방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그래서 카톨릭신자나 기독교 신자처럼 타종교인들도 참선화두에 관심만 있다면 함께 공부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또 시민선방은 20대 대학생부터 80대 노인까지 다양한 계층의 수행자들이 정진하는 곳이다. 스님은 “간화선은 가고·서고·앉고·눕고(行住坐臥), 말·침묵·움직임·조용함(語默動靜) 등 어떤 상황에서도 수행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길을 가거나, 앉거나, 설거지할 때, 청소할 때, 운전하면서도 가능한 수행법”이라며 “결국 누구나 발심만 한다면 일상에서 나를 끊임없이 관찰하며 자신의 마음자리를 보는 공부”라고 참선수행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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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심 한가운데 고즈넉이 자리잡은 봉은선방은 입방절차가 간소해 누구나 수행이 가능하다. |
8년째 시민선방에서 참선을 하고 있는 김영란(57)씨는 “참선의 맛을 알면 이 공부를 놓을 수가 없어요. 내 마음의 주인공 자리를 찾다보면 어느새 탐진치 삼독이 내려놓아져요. 황금 덩어리도 돌로 보일 만큼 욕망에 끄달리지 않게 되죠”라며 “물론 공부는 스승님에게 점검을 받으며 끊임없이 정진해 나가야 방향을 잃지 않는다”고 말한다.
봉은사 시민선방을 둘러보고 인터뷰하는 동안 흐렸던 오전 날씨가 활짝 개었다. 봄 햇살이 주변의 경관들을 환하게 비추니 하늘도 담벼락도 나무도 꽃도 모두가 있는 그대로 아름답고도 아름다웠다. 그리고 오전 정진을 마치고 말없이 차를 마시거나 포행을 하거나 또 열심히 바닥을 닦는 시민선방의 주인공들은 모두가 있는 그대로 평온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봉은사 시민선방은 우리 불교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를 엿볼 수 있는 한국 불교의 타임머신이었다. 선종사찰의 맥을 이어 누구에게나 참선 정진의 문을 활짝 열어 놓은 시민선방. 내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그 의문을 구하는 수행자들은 내일도 또 더 먼 미래에도 그들의 화두를 위해 정진해 나갈 것이다.
정혜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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