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 스트레스가 가장 큰 적”
긍정 사고로 정신건강 챙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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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4일 조계사 불교대학 강의실에서 개최된 조부모 교육에 참가한 불자들이 강의에 집중하고 있다. |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태아기 때부터 세 살까지 양육이 중요하다. 시대가 변화면서 인생을 정리하면서 삶을 반추하던 어르신들이 양육에 나서고 있는 지금. ‘행복한 조부모 되기’라는 주제로 세살마을이 주최한 조부모 교육이 11월 3일 조계사 불교대학에서 개최됐다. 사랑하는 손주들을 위해 학생으로 돌아간 조부모들의 아름다운 학습현장을 취재했다.〈편집자주〉
손자, 손녀 등 3명의 손주를 둔 허영숙(62)씨. 그는 요즘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는 손주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할머니가 될까 고민하고 있다. 무조건 안아주고, 먹을 것을 해주는 것으로 할머니의 역할이 한정되는 것이 싫기 때문.
그런 그에게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지난 11월 3일 조계사 교육관 내 불교대학 강의실에서 ‘세살마을 조부모 교육’이 문을 열었기 때문. 그녀는 교육관에 붙여진 교육 안내 포스터를 보고 난 후 바로 교육신청을 했다. 이날 허영숙씨처럼 좋은 조부모가 되기 위해 발품을 판 55명의 불자들로 강의실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조계사 불교대학에서 열린 세살마을의 조부모 교육은 삼성생명과 서울특별시, 경원대학교 및 종로구건강가정지원센터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행복한 조부모 되기’ 교육은 이날을 시작으로 3주에 걸쳐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 30분부터 낮12시까지 전개된다.
첫날 강좌의 강사는 이순례 강남대학교 사범대학 유아교육학과 교수. 이 교수는 “건강한 사람은 희망이 있고 희망이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다”는 말을 시작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나이가 들면서 찾아오는 신체적 노화도 문제지만 가장 큰 문제는 정신적 노화입니다. 가족들에게 섭섭하고 내 노화된 육체에 대해 불평불만을 가지면 노화가 더욱 빨리 진행됩니다. 내가 건강해야 손주들도 돌볼 수 있습니다. 건강이 최고입니다”
이 교수는 조부모들에게 미래가 아닌 현재 자라나는 손주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해야 함을 강조했다.
그는 “손자녀들의 재롱을 보며 자식들의 경제활동을 위해 헌신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며 “손자녀들이 성장한 다음에 보상을 받을 수 없다. 손자녀들과 함께하면서 행복과 보람을 느낀 것에 만족해야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 교수는 “하루 종일 할머니와 함께 있다가 부모가 퇴근해 돌아오면 부모 품에 안기는 손주들을 보면 서운할 것”이라며 “하지만 이제 밤이 됐으니 부모 품으로 돌려보내야지라고 생각하면 서운한 마음이 사라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경향신문이 올 1월에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조부모와 손자녀를 가족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10명 중 2명에 불과하다. 핵가족화가 불러온 비극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사회는 경제 침체, 여성의 사회활동 증대 등으로 인해 맞벌이 가족이 증가하고 있다. 과거처럼 뒷방에 앉아 손주들의 재롱을 보기만 하면 됐던 조부모들이 손주들을 직접 챙겨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손주들을 본 기쁨만 있는 것은 아니죠? 자식들을 대신해 어린 손주들을 돌봐야 한다는 스트레스. 육체적 피로… 우리가족의 안정된 삶을 위해 경제적인 도움을 주진 못해도 손주를 돌보겠다는 마음 하나로 아이들을 맡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속상하실 겁니다”
이 교수는 “조부모들의 양육 스트레스가 손자녀들의 신체·정신적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고 경계했다. 그는 “아기들이 조부모가 내 뱉는 말을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라며 “조부모의 스트레스는 손자녀를 우울하고 공격적인 아이로 자라게 한다. 신체적 학대 못지않게 정서적 학대, 언어적 학대를 삼가야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더불어 “모든 것을 궁금해 하는 3세 이상 아이들의 질문에 성의 있게 답변해야한다”며 “모든 것을 부모에게 물어보라는 식의 대답은 손주와 멀어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지식을 전달할 수 없어도 여러분들은 삶의 지혜로 충만한 분들이다. ‘할머니는 그런 거 몰라’ 식의 답을 하면 안된다. 최선을 다해 답변을 한 후 보충할 것을 부모들에게 맡기면 손주들이 조부모들을 외면하고 무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실제 사례를 들며 설명해서 그럴까? 강의에 참가한 여불자들은 “그래, 내가 그랬어. 그렇게 하면 안되는구나”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손주들과의 관계형성을 강조한 이 교수의 강의는 이제 조부모들의 건강으로 옮겨간다.
그는 “육체적 건강과 함께 마음이 건강해야 좋은 조부모가 될 수 있다”며 “언제 어디서나 좋은 생각을 하고, 가정이나 주변에서 선행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한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고, 나도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무엇보다 내가 가족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긍정적 사고를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때로는 웃으며, 때로는 손뼉을 치며 이 교수의 강좌에 흠뻑 빠진 조부모들.
허영숙 씨는 “함께 살진 않지만 평생을 좌우할 인격이 세 살 안에 이뤄진다고들 하는데 조부모가 어떤 역할을 해야 되는지 걱정을 많이 했다. 와서 강의를 들으니 마음이 뚫리는 기분이 든다. 오길 잘했다”며 강의에 만족을 표했다.
강의에 참여한 다른 보살도 “오늘 강의를 들으니 말 한마디라도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마냥 예뻐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좋은 교육에 동참하게 돼 기쁘다”며 발길을 옮겼다.
이번 교육을 마련한 조계사 측도 “조계사 신도 중 50~60대 여불자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라며 “불자들이 이번 교육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은 물론 가족을 위해 내가 무엇인가를 할수 있다는 자신감을 싶어주고 싶었다”고 교육 개최 취지를 설명했다.
시대가 변해도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주사랑은 변할 수 없다. 이날 ‘행복한 조부모 되기’ 교육에 참가한 55명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이미 행복한 조부모가 될 자격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짧으면 짧을 수 있는 1시간 30분의 강의. 하지만 이들은 오늘 현재 삶에 있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손주들을 위한 알찬 시간을 가졌다. 이런 할머니, 할아버지를 둔 손주들은 그야 말로 ‘복덩이’ 들이라는 생각을 하며 강의실을 빠져 나왔다.
김치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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