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안은 동국대 가족이다. 부친이 58학번, 형님이 85학번, 누나가 88학번, 나는 3수 끝에 92학번을 달았다. 모친만 다른 대학 출신이다. 그러다보니 과거에는 집안 화제에 학교이야기는 단골메뉴였다. 동국대 야구부가 춘계, 추계 대학야구 4강에 오르면 동대문야구장에 집합했다.
부친은 동국대에서 정년퇴직을 했다. 교수가 아닌 교직원이었지만 학교에 대한 자부심과 교직원으로서 정년퇴직한 것을 자랑으로 삼고 계시다. 나도 그런 부친이 자랑스럽다. 지금은 거의 정년퇴직, 혹은 명예퇴직을 하셨지만 부친과 인연이 있는 교직원 분들도 많이 알고 있다. 기자 질을 하면서 모교에 올라가면 그런 분들과 차 한잔 마실 수 있어 행복했다.
그들 역시 모교에서 교직원으로 학교를 위해 봉사하고 일할 수 있다는 것에 많은 자부심을 가지고 계셨다. 학교가 잘못 가고 있을 때는 비판도 마다하지 않았고, 당시 운동권 학생들과 소주 한잔 나누면서 학교이야기도 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자식들,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래”라고 하면서도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셨다. 부친은 과거 운동권의 성지였던 학과를 다닌 누나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다. 그래도 학생 때 운동(?)도 하는 것이라며 꾸중을 하지 않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족의 밥줄이 끊길지도 모르는 일인데 대단하셨다.
지난해 12월 초 학문구조개편안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총장실을 점거했다는 소식을 듣고 모교에 올라갔다. 학생들을 만나기 전에 만난 한 교직원은 “학생들이 너무해. 지금이 어떤 시절인데”라고 혀를 찼다. 보직 교수 한 분도 “녀석들이 외부세력과 연결해 일을 확장하려 한다. 순수한 의도로 보이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그날 나는 총장실에서 학생들을 만났다. 물론 어른들의 눈으로 보면 철부지 같고,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녀석들일 것이다. 총장실에서 나와 관련 학과 교수님 방을 찾아갔다. 그날 나는 조승연 학생을 만났다. 나는 승연학생이 부총학생회장인지 몰랐다. 그 방에서 나는 대학 측이 학과에 보내온 징계 관련 서류를 봤다. 당연히 승연학생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담담했다. 승연 학생은.
그리고 며칠 후 학생들은 학교 본관 앞에서 108배를 올리며 학문구조개편안 철회를 요청했다. 학(鶴)을 태우려 했지만 교직원들이 화재를 우려, 친절하게 대학본관 앞 도로에 물을 뿌려 이들은 당초 계획을 취소하고 108배를 올렸다. 승연 학생이 제일 먼저 108배에 나섰다.
다음날 이들은 점거 중인 총장실에서 쫓겨 나왔다. 강제해산을 당했기 때문. 그리고 이들은 천막농성을 했고 천막이 철거되고, 주동 학생들은 대학으로부터 퇴학과 정학 처리됐다. 게임이 끝난 줄 알았다.
1월 19일 저녁 견지동 전법회관에서 다시 이들을 만났다. 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와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주최로 이번 사태를 진단하는 대화마당이 열렸기 때문. 대화마당에 참가한 학생들은 차분히 자신들의 입장을 밝혔다.
많은 말들이 나왔다. 재정이 열악한 동국대가 국고보조금이나 각종 사업을 유치하기 위해 학문구조개편을 할 수 밖에 없다. 학교가 이번에 강경조치를 내린 것은 교수와 함께 학생들까지 힘을 빼기 위해서다. 조계종립대학이라는 동국대가 자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집단이 됐다. 등등…
하지만 대화마당에 참석한 학생, 동문 등은 아무리 많은 비판과 대안을 말해도 결국 징계권을 쥐고 있는 대학을 쳐다 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직시하고 자리를 파했다. 학생들을 위해 마련된 대화마당이 학생들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현실도 그날 알게 됐다.
대화마당에 참석한 한 동문은 “동문들이 광고를 낸다고 하니 홍보실에서 전화가 왔다. 긍정적으로 일을 처리하려고 한다. 광고를 막으려 하는 것은 아니다. 대학에서 잘 처리 하려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자기에게는 그렇게 말한 대학 측이 학생들에게 ‘이제 너희들과는 끝이다. 더 봐줄 것이 없다’는 전화가 왔다며 학교가 참 잔인하다”고 말했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학교 입장에서 보면. 개학 전 일을 마무리 하려하는데 동문들이 까불고, 몇 몇 스님들이 나서고 일이 커지면 올 대학평가에도 막대한 문제가 생기고, 제2건학을 위해 모연활동을 해야 하는데 참 난처한 일이다. 대학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교수와 교직원들의 마음도 모르고 철부지 학생들이, 그것도 소수 과 학생들이 난리법석을 폈으니 말이다.
그날 동문들과 지난해까지 동국대 학생이었던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핵심이 빠졌 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들은 재단, 총장, 교수들에게는 많은 비판을 가했지만 교직원들에 대해서는 별 비판을 가하지 않았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교직원들에 의해 벌어졌다고 하는데 말이다.
이제 설이다. 19일 밤 10시경 대화마당이 끝나고 나오면서 학생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녀석들도 집에 들어가면 소중한 자식이고, 대학 갔다고 부모님이 한숨 돌리셨을 텐데 퇴학을 당해 부모님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라는.
학문구조개편도 좋고, 대학발전도 좋다. 그리고 명분도 있다. 징계도 당연하다. 총장실을 점거하고 교직원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가했으니. 하지만 과거 교직원들은 대학에 대한, 모교에 대한, 모교가 아니라도 교직원인 것에 대해 프라이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날 대화마당에서 나온 이야기를 들으며 그런 것도 과거가 됐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모든 사회는 주체세력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주체가 사회를 이끌어 가야 한다. MB가 임기 1년을 남겨두고 온 국민이 싫어하는 대통령이 된 것도 죄송하지만 이 대통령이 정치인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 CEO를 자처하지 않았나. CEO는 경영을 잘할 수 있지만 정치인은 경영을 하는 자리가 아니다. 국정을 운영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동국대의 주체가 대학의 핵심인 교수와 학생이 아닌 교직원이 된 느낌이다. 전 총장, 현 총장도 대학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개혁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학교 상황에 밝은 교직원들이 중심에 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교수사회도 개혁 대상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명분 있는 개혁도 그 사회를 이끄는 주체 세력들의 동의를 받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다. 정관으로, 법으로, 힘으로 주체 세력을 누르면 누를수록 저항은 커지게 마련이다. 지금은 침묵하고 있지만 말이다.
자비의 정신으로 학생들의 징계를 완화하면 모든 일이 끝날까? 대학본관 앞에 서 있는 불상은 모든 것을 보셨다. 불상은 한 낱 조각품이 아니다. 그것을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설날 떡국 맛있게 드시길…
http://www.bulgyonews.co.kr/news/22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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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 여러분 심석희 선수 적극 응원합시다 심석희 선수 파이팅..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