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어사 일주문 신비주의 표출
화엄사 각황전 화합정신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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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종합예술대학 김봉렬 교수는 2월 21일 불교진흥원에서 한국 절집의 지리적 교리적 문화적 의미를 찾는 강의를 가졌다. |
집은 한 사람의 삶을 대변하는 동시에 한 시대의 문화를 말해주기도 한다. 1천 7백년 불교 역사를 가진 한국의 옛절 또한 옛 스님네들이 살았던 당시의 문화를 읽을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다. 절입구 진입로에서부터 일주문 대웅전 명부전 산신각까지 절 곳곳에 베여 있는 흔적들을 한 시대의 문화를 대변하는 역사 교과서이기도 하다. 한국종합예술대학교 김봉렬 교수는 전국 곳곳의 사찰을 돌아다니며 그에 담긴 미학과 문화를 읽어내고 있다. 또한 그는 저서〈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컬처그라퍼) 개정판을 통해 새롭게 절집의 미학을 알려나가고 있었다. 〈편집자 주〉
2월 21일 불교진흥원에서는 ‘숨 쉬며 소통한다 - 자연으로 지은 집, 절집’이라는 주제로 화요열린 강좌를 열었다. 건축전문가와 떠나는 머물고 싶은 옛집, 옛절 기행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강좌에는 김봉렬 교수를 초빙 한국 절집의 지리적 교리적 일상적 의미를 찾으며 절 건축의 미학을 엿보는 시간이 마련된 것이다. 강의 대부분은 故관조스님이 찍은 사진을 위주로 대중들에게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돼 청중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김 교수는 첫 번째로 범어사 진입로와 일주문 사진을 화면에 띄웠다. 범어사 3칸 일주문은 해동 화엄종의 증조 의상 대사가 화엄 10찰의 하나로 678년(신라 문무왕 18)에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곳은 10만의 왜구들이 동해안을 침범하여 신라를 위태롭게 할 즈음 금정산 밑에 범어사를 세우니 왜구들이 물러갔다는 창건설화가 전해질 정도로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이처럼 높고 급한 경사지에 사찰이 자리잡으면 전략적으로는 유리하지만 일반 신도들이 출입하기는 매우 불리하다. 특히 억불숭유 정책을 쓰는 조선시대는 더더욱 위치상 불리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김 교수는 “여러 이유 때문에 등장하게 된 것이 바로 이 산문입니다. 산문은 사실 사상적 배경보다는 실제적인 필요성에 의해 더 절실했던 문입니다. 가람의 경계를 뜻하며 속계와 성소를 구별짓는 일주문, 33천 가운데 사천왕천을 뜻하며 가람의 수문장 역할을 하는 천왕문, 또는 금강역사들의 금강문, 진리는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설파하는 불이문 등 이 모두는 겹겹이 세워져 가람의 성스러운 이미지를 자아내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한다.
그 가운데 범어사의 진입로는 뛰어난 구성을 하고 있다. 수십 동의 건물들로 가득한 대가람이지만 건축적 핵심은 바로 그 진입부에 있다고 김 교수는 말한다. 그는 “3칸 일주문은 보기 드문 경우죠. 이곳을 지나면 천왕문이 나오고 다시 불이문이 나오는데 이 진입부가 바로 클라이맥스이며 한국 불교 건축이 성취한 가장 뛰어난 장면 가운에 하나입니다. 문이 하나도 없으면 들어가고 싶지 않지만 이렇게 열려 있는 공간이 층층이 있으면 궁금증을 자아내지 않습니까? 일종의 유혹이죠. 그리고 지나가던 이가 들어오게끔 하는 일종의 장치가 되는 겁니다”라고 설명한다.
절묘한 공간 활용을 통해 종파 간 화합을 보여주는 화엄사 건축 역시 흥미롭다. 지리산 화엄사는 건축적으로 매우 특이한 사찰이다. 각황전(국보 67호)과 대웅전(보물 제299호)이 바로 그것인데 하나의 마당을 감싸며 직각 방향으로 서 있다. 각황전은 화엄 신앙의 소산물이며 대웅전은 법화 신앙의 소산이라고 볼 때 이 두 건물이 한 마당 안에 있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김 교수는 “544년(신라 진흥왕 5)에 창건된 화엄사는 당시 여러 정황을 살펴 볼 때 화엄사찰이라고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당시 3층 건물이었던 각황전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지고 다시 지어진 2층 규모의 건물이죠. 그런데 대웅전은 각황전보다 작은 단층 건물입니다”라고 설명한다.
이어 김 교수는 “보제루의 동쪽 끝에서 보면 큰 각황전과 작은 대웅전의 크기가 거의 같게 보입니다. 여기에는 약간의 트릭이 있습니다. 입구로부터 각황전은 멀리 떨어져 있고 대웅전은 가깝습니다. 또한 석단 위에 건물들이 앉았는데 각황전은 석단에서 멀리 물러앉았고 대웅전은 가깝게 앉았습니다. 이러한 건축적 장치를 통해서 각황전과 대웅전은 그 절대적 크기와는 무관하게 상대적으로 같은 크기로 보이며 동등한 중심 전각의 위상을 갖게 됩니다”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우리는 옛 스님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김 교수는 “결국 처음 세워질 당시 화엄종의 중심사찰이었던 화엄사는 이후 그 중심이 법화 신앙(선종 계열)으로 바뀌면서 대웅전 중심 전각이 필요로 했습니다. 하지만 기존 각황전을 보호하면서 대웅전이 중심 가람이 되도록 건축하게 된 것입니다. 종파와 교리가 바뀌었지만 과거의 형식을 보존하고자 하는 옛 스님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죠”라고 전했다.
소박한 가람과 절제의 미학을 엿볼 수 있는 봉정사 영산암 마당 풍경 또한 주목할 만한 공간이다. 사찰 건축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건물과 건물 사이에 비어 있는 공간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하는 김 교수는 소나무를 중심으로 한 영산암 마당에 초점을 맞춘다. 영산암 두 마당 사이에는 바위가 하나 놓여 있고 그 바위 사이에는 잘생긴 소나무 한그루가 있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원래부터 있었던 자연물인 것 같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일부러 그 자리에 심은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소나무의 그림자에 주목하게 된다.
그는 “이 그림자는 아래의 큰 마당과 위의 작은 마당이 연결된 부분에 절묘한 그늘을 만들고 그 그늘은 두 마당이 마치 분리된 것처럼 보이게 만들며 각 마당에 독립성을 부여합니다. 그러나 그림자는 어디까지나 허상입니다. 따라서 두 마당은 관념적으로만 분리되며 실제로는 항상 하나로 통합되어 있죠. 이처럼 통합, 실상과 허상을 동시에 획득하는 장치가 작은 소나무가 되는 것이죠”라고 설명한다.
한편, 불교진흥원은 2월과 3월 ‘자연과 인간이 통(通)하는 집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삶을 담는 공간으로서의 집과 불교의 이념을 보여주는 절집 강좌를 연속으로 펼친다. 2월 김봉렬 교수의 강연에 이어 3월에는 한국문화의 결정판인 한옥을 주제로 한 강좌가 이어진다. ‘한국문화가 살아있는 한옥을 말하다-작은 한옥의 아름다움 속으로’라는 주제로 3월 20일 저녁 7시 신광철 한국문화콘텐츠개발연구소장이 강사로 나설 예정이다.
정혜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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