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12일 전남 진도 팽목항 방파제에 시민들이 헌화한 국화꽃이 밤바다를 지키고 있다. 앞에 보이는 섬들 너머가 세월호 침몰 현장이다. |
지난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 1년 전 이곳에는 애끊는 부르짖음이 가득했다. 차가운 바다에 빠진 자식들을 둔 부모들은 “내 새끼 어딨어”하며 바다를 향해 울부짖었다. 그러나 검은 바다는 출렁이기만 할 뿐 대답이 없었다. 진도 팽목항은 그렇게 온 국민의 아픔의 상징이 됐다.
지난 12일 1년 만에 다시 찾은 팽목항. 팽목으로 이어진 길은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40여㎞ 떨어진 해남에서부터 ‘세월호를 인양하라’는 노란 깃발과 리본이 펄럭였다. 노란 리본으로 가득 찬 팽목항은 조금씩 일상의 평범함을 회복하고 있었다. 싸늘하게 식은 채 인양된 자식들을 확인한 부모들의 울음이 넘쳐나던 시신(신원)확인소는 희생자를 추념하는 분향소로 바뀌었다. 건져 올린 아이들에게 번호를 매겨 특징을 적어두던 게시판에는 인근 섬들을 오가는 배들의 입출항 시간표가 붙어 있었다.
 |
| 세월호 참사 1주년을 하루 앞둔 15일 오후 세월호가 침몰한 전남 진도군 조도면 해역에서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헌화하며 오열하고 있다. |
희생자 가족들도 1년 전과 달랐다. 분향소 입구에는 방문객을 위한 귤 한 상자가 놓여 있다. 슬픔을 감당치 못해 악다구니 치던 희생자 가족들이 팽목항까지 찾아오는 이들에게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서다.
유가족들이 비를 맞으며 울부짖던 방파제는 추모의 글들이 가득했다. 희생자 가족들은 고인이 된 이들이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기를 빌기도 했고, 많은 이들이 진실이 밝혀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참사 1주기를 맞아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사고 해역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울기도 했다.
진도 주민들도 일상으로 돌아갔다. 예전처럼 어부들은 새벽마다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갔고, 잡아온 생선들은 시장에서 팔렸다. 유족들이 머물며 하염없이 구조소식을 기다리던 진도실내체육관은 전남도민체전 준비로 이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1년이라는 시간은 깊게 베인 마음의 상처까지 치유하기엔 짧았다. 진도 도로 곳곳에 붙은 노란 리본은 잊고 싶은 기억을 되살렸다. 날짜 없이 적힌 ‘○일 동안 저 바닷 속에 있는 우리 가족을 찾아주세요’라는 메모는 옛 상처를 파고들었다. 기억하겠다는 다짐은 빛이 바랬지만, 세월호의 아픔은 아직까지 퍼렇게 날이 서 있었다.
전남 진도군 맹골수도의 차디찬 바다 속에 가족과 친구, 연인을 잃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 등은 눈물과 고통 속에서 참사 1주년을 맞고 있다. 언론을 통해 다시 노출되는 세월호의 모습, 실종자 가족들의 눈물, 정부의 소극적인 사고 해결 노력 등을 바라보며 유가족과 단원고 학생들은 분노와 죄책감을 넘어 트라우마(과거 충격적인 사건의 경험이 현재까지 정신적 고통과 상처로 남아 스트레스가 지속되는 것)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참사 1주년을 나흘 앞둔 12일, 딸을 잃은 한 아버지(김 씨)가 ‘딸 명찰’을 목에 건 채 전남 진도군 팽목항의 분향소를 지키고 있었다. 그 날의 기억을 지우려 팽목항을 떠나 안산의 집에 들러도 김 씨는 하교 후 늘 옆에서 재롱을 피우던 이쁜 딸이 생각나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세상의 전부였던 딸이 세월호를 탔던 지난해 4월 16일, 김 씨는 딸에게서 다급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 전화가 딸과의 마지막 통화가 될 줄 김 씨는 꿈에도 몰랐다. 딸은 사고 직후 김 씨에게 전화를 걸어 “아빠 나 좀 데려가”라고 말했고, 김 씨는 주변에 선생님이 있다는 딸의 말에 “안심하라”는 말을 건넸다. 하지만 얼마 후 세월호는 바다 깊이 가라앉았다. 김 씨는 “그 때 얼른 도망치라고, 밖으로 나가라고 말해줬어야 했는데 제대로 판단하지 못해 딸을 살리지 못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세월호 참사의 고통은 진도 팽목항 뿐만 아니라 단원고가 있는 안산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생존한 단원고 학생들과 일반인 생존자들은 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에서 전문적인 심리치료와 상담을 받고 있지만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고 있다.
방파제엔 빛바랜 노란리본 “제발, 엄마 품에 오느라”
자식 목매 기다린 진도체육관은 도민체전 준비 한창
딸 보낸 아빠 등대에 기대 죄책감 사로 잡혀 ‘눈물만’
생존자, 트라우마 증세 감정복잡하게 엮여 치료 난감
1년이라는 시간은 초조하게 시신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기다리던 실종자 가족도 팽목항에서 떠나게 했다. 이제 팽목항에 상주하고 있는 실종자 가족은 1명뿐이다. 가족의 흔적이라도 찾기 위해 떠났던 실종자 가족들이 세월호 1주기를 맞아 돌아왔다. 하지만 그들은 예전처럼 울부짖지 않는다. 담담히 그날의 기억과 싸우고 있을 뿐이다.
다시 밤이 돌아왔다. 유가족들은 또 다시 팽목항 팡파제에서 흰 국화꽃을 던지며 눈물을 흘린다. 일렁이는 파도 휩쓸린 국화꽃이 앞에 보이는 저 섬 너머 세월호 침몰 현장까지 다가가기를 빈다. “아들아 딸아 사랑 한다”
이재우 기자
http://www.bulgyonews.co.kr/news/29742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독자의견 (총 0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