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l  로그인  l  회원가입  l  아이디/비밀번호찾기  l  2025.4.5 (토)
 http://www.bulgyonews.co.kr/news/37194
발행일시: 2022/10/25 14:01:43  편집국
김홍배 박사의 만다라 이야기(23)
금강계 만다라의 일인회(一印會)

김홍배 박사의 만다라 이야기(23) 

 금강계만다라의 일인회(一印會)



금강계만다라의 일인회(四印會)는 구회만다라(九會曼茶羅)에서 맨 위쪽의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지난 호에서 살펴보았던 미세회의 오른쪽이다. 일인(一印)은 비로자나부처님을 가리킨다. 그러나 일인은 반드시 비로나자불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어떤 불보살이 되었든 일존(一尊)을 모신 경우에 모두 일인(一印)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서 제불보살(諸佛菩薩) 가운데 일존(一尊)을 선택하여 그 본존(本尊)의 형상(形像)이나 불화(佛畵)로써 조성한 것을 일인(一印)이라고도 한다. 금강계 구회만다라(九會曼茶羅)에서 일존(一尊)은 비로자나불의 일인회(一印會)다.

이 일인회(一印會)는 지난 호에서 언급했던 사종만다라(四種曼茶羅)의 사인회 뿐만 아니라 37존의 모든 불보살을 총섭하고 있다. 그래서 이 일인회를 대만다라(大曼茶羅)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체만상 모든 것을 하나로 통합하고, 모든 것을 총섭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강계만다라에서 일인(一印)은 한 분의 부처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므로 37존의 제존(諸尊)을 모두 포함한다. 다만 일인회에서 37존이 생략되어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일인회를 37존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성신회(成身會)의 축소라고 할 수 있다. 금강계만다라 전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일인회를 넷으로 나누면 사종만다라의 사인회가 되고, 37존으로 확장하면 대만다라의 성신회가 되는 것이다. 반대로 37존의 성신회(成身會)를 넷으로 줄이면 사인회(四印會), 하나로 줄이면 일인회(一印會)가 되는 것이다. 즉 일인과 사인, 성신회는 모두 같은 대만다라이며 존상(尊像)의 수만 다를 뿐이다. 화엄의 일즉다(一卽多), 다즉일(多卽一)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 일인(一印)은 여러 가지로 표현되는데, 비로자나불의 존형(尊形)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비로자나불의 인상(印相)인 지권인(智拳印)이나 삼매야형인 보탑(寶塔) 등으로도 표현된다.

이 가운데 지권인은 금강계만다라의 비로자나불을 나타내는 인상(印相)이다. 태장계만다라에서는 비로자나불의 인상(印相)이 법계정인(法界定印)이다. 이를 정법계인(定法界印)이라고도 부르는데, 선정에 드는 결인이다.

지권인은 금강계의 비로자나불이 맺고 있는 결인으로, 양손을 금강권(金剛拳)으로 하고 왼손의 두 번째 손가락을 세우고 오른손 주먹으로 감싸 쥐고 있는 인상(印相)이다. 오른손을 위로 두고, 왼손을 아래로 둔다. 이는 인도인의 전통적인 사고(思考)에 바탕을 둔 것으로, 왼손은 부정(不淨)의 의미, 오른손은 청정(淸淨)하고 바르다[正]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나아가 불교에서 왼손은 중생의 세계, 오른손은 불(佛)의 세계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왼손의 금강권은 중생의 생명을 상징하며, 오른손의 금강권은 절대자인 법신(法身)의 지혜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양손의 결합은 중생이 부처가 된다는 성속(聖俗)의 합일(合一)을 의미한다. 즉 중생이 불(佛)가 된다는 의미다. 따라서 지권인은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며 깨달음과 미혹이 일체라는 것을 나타내며, 중생이 무명(無明)을 없애고 지혜를 증득하여 부처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식불교(唯識佛敎)의 전식득지(轉識得智)를 말하고 있다.

또 일인(一印)은 지권인 외에 삼매야형으로도 표현되는데, 바로  보탑(寶塔)이다. 보탑은 금강계만다라의 삼매야형이다. 태장계만다라의 경우는 오륜탑(五輪塔)이다. 보탑(寶塔)은 연꽃 위에 옆으로 눕혀 놓은 오고저(五鈷杵)의 위에 올려져 있는 삼매야형이다. 보탑은 보리심을 상징하는데, 이를 풀어 설명하면, 깨달음[연꽃]을 얻기 위하여 굳건한 정진수행[오고저]을 행함으로써 구경에는 보리심[보탑]을 얻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깨달음을 얻는다, 성불한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일인(一印)은 비로자나불의 존형(尊形)과 지권인(智拳印), 보탑(寶塔) 등으로 표현되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현도만다라(現圖曼茶羅)에서 해당되는 내용이고, 실제 경전에서는 비로자나불이 아니라 금강살타로 묘사되고 있다.『금강정경』에서 일인(一印)을 금강살타라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인(一印)이 서로 다른 이유는 무엇이며, 왜 금강살타를 내세우고 있는가?
금강살타와 비로자나불은 사실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니다. 금강살타가 곧 비로자나불이며, 비로자나불이 금강살타이다. 금강살타와 비로자나불은 동일시 되고 있다. 그 내용은 금강정경 계통의 경전인『진실섭경』에 잘 나타나 있는데, 경전에 ‘대사(大士)의 몸인 금강살타가 바로 여래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대사(大士)는 비로자나불을 가리키며, 금강살타는 곧 비로자나불을 의미한다. 경전에서 ‘금강살타가 대사’이고 ‘금강살타가 여래’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금강살타가 곧 비로자나불이 되는 것이다. ‘대사=금강살타=여래’라는 등식과 함께 모두가 비로자나불이라는 것이다. 일존(一尊)과 제불보살(諸佛菩薩)의 상입상즉(相入相卽)과 다즉일(多卽一) 일즉다(一卽多)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또 경전에서는 ‘티끌처럼 수많은 제불(諸佛)은 모두 금강살타로부터 나온다’고 하였는데, 이는 금강살타에서 제불(諸佛)이 출생한다는 말로서 보살을 불(佛)의 상위에 두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배치는 불보살, 명왕 등의 순차와 순위에 어긋나는 것이지만, 보살을 불(佛)의 상위에 올려놓는 사고는 금강살타가 곧 비로자나불이라고 여기는데서 비롯된 것이다. 공능(功能)에 있어서 둘은 다르지 않다는 의미다. 비로자나불을 대신하여 금강살타가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 이유다.

이러한 배치는 준제보살의 경우에서도 동일하게 볼 수 있는데, 마찬가지로 준제보살을 불(佛) 보다 상위에 두고 있는 것이다. 준제보살을 온전히 갖추어 부르면, ‘칠구지불모준제보살’이다. 준제보살이 칠억 부처님의 어머니라는 의미이다. 어찌하여 준제보살을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라 하는가? 이는 청정한 준제보살이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 된다는 말로서 곧 ‘청정’이 바탕이 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청정의 측면에서 준제보살이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가 되고, 지혜의 증득이라는 측면에서 금강살타가 모든 부처님을 출생시키는 존재로서 상위(上位)의 지위를 갖는 것이다. 그래서 금강살타가 모든 부처님을 출생시키는 존재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금강살타를 내세운 것은 제불(諸佛)의 지혜가 금강살타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바로 ‘지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금강살타는 지혜를 상징한다. 그래서 지혜의 보살인 금강살타가 모든 부처님의 출생처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중생이 지혜를 증득할 수 있도록 옆에서 보조자 역할을 하는 것이 금강살타보살이며, 실제로『진실섭경』에서도 제불(諸佛)의 지혜를 생장케 하는 주체로서 금강살타가 묘사되고 있다.

『금강정경』계통의 경전에 나타나는 주된 가르침은 지혜의 증득인데, 이러한 지혜의 증득은 곧 금강살타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금강살타를 대치(代置)한 이유라 할 수 있다. 금강살타가 지혜를 발동시키고 생장시키기 위한 주체자인 것이다.

이와 같이 일인으로 등장한 금강살타는 곧 수행의 과정을 나타낸 것이고, 비로자나불은 수행의 결과로서 표현된 것이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진언행자가 스스로 금강살타라 자각하고 지혜를 생장시키기 위하여 마땅히 금강살타와 상응해야 한다고 설하고 있다. 그 상응하는 법이 바로 삼밀수행이다.

<다음호에서 이취회(理趣會)에 대해 살펴 본다>


기사 출력  기사 메일전송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밴드공유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독자의견 (총 0건)
독자의견쓰기
* 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 등 목적에 맞지않는 글은 예고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 등록된 글은 수정할 수 없으며 삭제만 가능합니다.
제    목         
이    름         
내    용    
    
비밀번호         
스팸방지            스팸글방지를 위해 빨간색 글자만 입력하세요!
    

‘간월암의 일출’

태고종 양주 청련사 불기2568년 봉축 법요식 봉행
 
  l   신문사 소개   l   연혁   l   조직구성   l   본사 및 지사 연락처   l   기사제보   l   개인정보보호정책   l  
copyrightⓒ2001 주간불교 All rights reserved.
서울시 종로구 삼일대로 30길 21, 1415호(낙원동, 종로오피스텔)
편집국·업무국 02)734-0777 Fax : 02)734-0779
주간불교의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