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설악산부터 물들기 시작하는 가을입니다. 산과 들은 오색찬연한 울긋불긋한 옷을 갈아입은 듯 단풍의 물결 천지입니다. 풍성한 가을을 재촉하는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기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오랜만에 인생 소풍에 나설 것입니다.
참 시간이 빨리도 흘러갑니다. 우리 마음은 이팔청춘인데, 이제는 어르신 소리가 자연스레 들리는 듯 해서 나이를 먹었구나 생각을 하게 됩니다. 눈 감으면 어린 시절이 보이는 듯 한데 제 얼굴에도 주름이 생기고 손 역시도 쭈글쭈글해 지는 것을 보면 세월 이기는 장사는 없는가 싶습니다. 출가 사문으로 산지도 벌써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 스쳐 지나갑니다. 자고 일어나 보니, 통도산 도량을 뛰 돌던 아이가 죽음을 자연스럽게 이야기 하는 노승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역사상 유래없이 빠른 속도로 장수국가가 되었습니다. 2024년 남녀평균수명 조사에서 여자 90.7세 남자 86.3세가 나왔습니다. 참으로 백세시대란 말이 실감이 납니다. 하지만 백세를 산다 해도 온전하게 백년살이를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내 생각대로 내 의지대로 내 발길이 닿는 것이 바로 우리 인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남의 도움으로 사는 인생은 남의 인생이지 내 인생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 우리는 우리 인생을 바르게 살도록 해야 합니다. 부처님의 초기 가르침을 모은 <증일아함경>에 ‘인생역정’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부처님께서 사위성 기원정사에 계실 때였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남섬부주의 사람들은 수명이 길어야 100세이지만 중간에 일찍 죽는 사람도 많으니라. 비록 사람이 100세까지 살더라도 사는 동안 나이에 따라 행동도 같지 않고 성질도 각각 다르게 나타내느니라.
처음 10대 때는 아직 어려서 지각이 없고, 20대에는 얼마간의 지각은 있으나 아직 완전하지 못하며, 30대에는 의욕이 왕성하고 이성에도 집착하게 된다. 40대에는 온갖 기술이 많아서 하고자 하는 일도 끝이 없으며, 50대에는 이치에 해박해지고 또 익힌 것을 잊어버리지도 않는다.
60대에는 결단력이 없어지면서 재물에 집착심이 강하고, 70대에는 게을러져서 잠자기를 좋아하며 몸도 둔해지고 성질도 느슨해지면, 80대에는 젊은 마음이 없어져 치장하지 않게 된다. 90대에는 병이 많아지고 피부가 쭈그러져 주름살이 깊어지며, 100대에는 감각기관이 쇠퇴하고 뼈마디가 드러나며 정신이 혼미해져 건망증이 심해진다.
사람이 100년을 살자면 그만한 어려움도 겪어야 하고, 300번의 계절을 보내지만 그래도 수명이 족함을 느끼지 못한다. 100살을 살면 3만 6천 끼니를 먹게 되는데 화가 나서 먹지 않는 때가 있고, 주지 않아서 먹지 못하는 때가 있으며, 병이 나서 먹지 못하는 때도 있고, 어려서 모유를 먹는 때도 있어, 대략 3만 6천 끼니가 되느니라. 그러므로 젊어서 게으르지 말고 현재의 몸으로써 번뇌를 없애야 한다.”
경전의 말씀대로 우리 인생은 참으로 변화무쌍합니다. 부모님 밑에서 생활하는 10대에는 모든 면에서 배우지 못해 자주 실수하고, 20대에는 바른 인생관을 갖지 못해 크고 작은 일들을 저지르곤 합니다. 30대에는 뜻을 세워 세상을 살려고 하지만,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40대에는 인생을 사는 멋을 알기에 자신이 생각한 대로 살려고 하지만 가족이나 주위의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자신의 뜻을 꺾기도 하고 쉽게 생각하던 일들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50대에는 세상을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회 구조로 인해 인생이 쉽지 않고 더욱 어렵게 느껴집니다.
60대에는 장년기의 일을 그만 두고, 새로 사는 인생이라 생각하지만 자신은 생각하지 않고 탐욕심만 키우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70이 되면 모든 일에 의욕이 없어지고 소극적인 모습으로 변합니다. 80이 되면 건강만 생각하다 자신의 참된 본성을 자주 잃어버리게 되어, 자신의 성품을 잊고 살기도 합니다.
90이면 병이 자주 생겨 치매도 오고 자신의 의지대로 살지 못하며, 100세에는 숨만 쉬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지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살아야 하는데, 삶에 집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인생은 오래 산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태어나면 죽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못해 힘들어 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부처님 법을 잘못 받아들이는 사람 가운데, 이 삶을 더 살고자 하는 욕심을 내기도 합니다. 자신만을 위해 모든 세상이 다 움직여져야 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린 누구나 죽음 앞에 평등합니다. 그러나 그 죽음을 바로 보고 잘 받아들일 때 우리는 참다운 수행자의 길을 걸어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삶에 집착하고 삼독심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다시 못 올 지금 이 순간을 헛되이 보내려 합니다. 백년살이를 헛되이 보내면 남는 것은 허망함뿐입니다.
신해사 회주 무공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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