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가을입니다. 하늘은 더없이 높고 푸르고, 가을 들녘은 어느새 황금 물결로 농부의 자식들이었던 우리들의 마음을 푸근하게 합니다. 또 설악산에서 시작한 단풍 물결이 소백산을 지나 남녘에도 조금씩 물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세월의 무상함을 또 한 번 느껴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 무심히 다가오는 가을을 지내면 눈꽃이 피어나는 겨울이 다가오겠지요. 노승이 머무는 사천 신해사에 곧 단풍의 물결이 넘치면 올 한해 역시 무심히 지나가고, 겨울답지 않은 겨울을 보내고 있을 것입니다.
평생을 한결같이 열심히 사셨던 스님들이 신해사에 잊을만하면 오십니다. 공부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등을 바랑에 넣어 오시는 분들이시지요. 이 수좌들과 법담을 나눌 때, 요즘처럼 절에서 사람 보는 것조차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우리 사찰 역시 그러하지요. 그만큼 코로나 19를 보내고 많은 불자님들이 절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 중에 더러 노보살님께서 아미타부처님 곁으로 가셨지요.
신해사라고 하는 살림을 살아야 할 회주로서는 불자들이 많이 오면 좋겠지만, 어쩌면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 것이 오히려 수행자에게는 공부할 시기라 생각하기에 더욱 기도에 매진합니다. 그러나 중생구제를 늘 마음에 담은 대승 불자에게는 불자들이 절에 오지 않는 것이 걱정거리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모든 현상은 앞뒤가 따로 존재하지 않고 함께 존재합니다. 어떤 상황을 볼 때 어떤 사람은 좋다고 하지만 또 나쁘기도 한 것은 그 사람이 처한 상태가 그렇게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이 고통을 느낀다면 그 고통의 깊이만큼 오히려 공부가 깊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 세상은 덧없이 흘러갑니다. 여러분들이 아끼고 손에 넣고자 하는 것들이 어쩌면 새벽 이슬처럼 덧없는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을 늘 명심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올 때 여러분들이 많은 것을 가지고 오셨습니까? 아니지요. 맨몸으로 왔으니, 갈때에도 맨몸으로 가야합니다. 그런데 왜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집착하고 남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만듭니까?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가 지닌 욕심도 내려놓고 우리 자신을 자세히 살펴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살날은 지금까지 살아온 날보다 휠씬 적게 남았습니다. 의미있게 우리 자신을 잘 살피며 사시는 것이 수행이고 공부라 할 수 있습니다.
빗물이 모여 내를 이루고 냇물이 모여 강을 이루며 강물이 모여 바다를 이루듯, 진리 또한 그와 같아서 사람마다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각각이지만, 궁극에 이르러서는 하나로 통합니다. 하지만 중생들은 이러한 이치를 망각하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빠져 보라는 달은 보지 못하듯, 정작 추구해야 할 진리는 외면한 채 작은 것에 빠져 헤매는 우를 범합니다. 그러기에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에 대해 잘 알아가야 합니다. 알아가는 것이 불자로서의 공부이며 실천인 것입니다. 그 공부의 중심은 죽음입니다.
불교경전에서는 죽음에 대해서 많은 반성적인 사유를 하고 있습니다. 먼저 죽음은 위기적인 상황으로 묘사된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먼저 <숫타니파타> 대품 ‘화살경’을 통해 죽음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인간의 수명은 정해져 있지 않아, [언제까지 살지] 알 수 없고, 비참하고, 짧으며 고뇌로 얽혀 있다. 태어난 존재에게 죽음을 피할 방도는 없다. 늙음에 이르러 죽음을 맞이한다. 정말로 생명 있는 존재에게 이것은 정해진 이치(법)이다. 익은 과일은 떨어질 두려움이 있는 것처럼, 이와같이 태어난 자는 항상 죽음 때문에 두려움이 있다.
또 <숫타니파타> 팔게송품 ‘늙음경(Jar-sutta)’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아아 짧구나, 인간의 목숨이여! 백 년도 못 되어 죽어버린다. 아무리 오래 산다고 해도 늙어서 죽는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오래 산다 해도 백 년이며, 결국은 늙어서 죽는다고 하는 자각은 삶이 무가치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불교에서는 생존 기간이 길지 않은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얻기 어려운 기회를 얻은 것이라고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불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눈먼 거북이(盲龜遇木)’의 비유는 인간으로 태어난 삶의 소중한 가치를 느끼게 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너무 사랑하고 애뜻하게 좋아했습니다. 나만이 완벽하다고 여기며 현자라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많이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만나면 끝없이 언쟁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곧 다가올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고 내 나름대로 인생을 잘 정리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작은 것을 버리면 큰 것을 이루는 이치를 깊이 유념하는 하루가 되길 바라면서 더 열심히 자신이 누구인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신해사 회주 무공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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