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의 ‘당신의 나무’
앙코르와트서 얻은 상생 가르침
나비효과로 푼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
김영하의 ‘당신의 나무’는 작가의 다른 소설과 어느 정도 패턴이 동떨어져 있다. 작가 개인에게는 현대문학상이라는 공신력 있는 문학상을 거머쥐게 한 작품인 ‘당신의 나무’는 그 배경이 도시가 아니라는 점과 기행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작품과 차별성을 띤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당신의 나무’는 로드로망이라는 점과 선(禪)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어느 부분 윤대녕의 소설을 닮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당신의 나무’는 지리멸렬한 일상의 삶에서 훌쩍 뛰어넘어 일각에 깨치는(선가의 말을 빌리자면 돈오돈수頓悟頓修라 말할 수 있는) 윤대녕 소설 공식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고 있다. 다루고 있는 주제부터가 다르다. ‘당신의 나무’는 나비효과를 중층구조의 제재로 사용해 연기사상을 역설하고 있으며, 나무와 불상이 서로 얽혀 있는 앙코르와트 사원의 모습을 통해 상생(相生)의 가르침을 풀어내고 있다. 국내 소설에서는 조금 생경스러운 2인칭시점을 사용한 것도 우주만물의 관계가 상즉상입(相卽相入)하는 중중무진법계연기(重重無盡法界)의 법칙에 의해 이뤄졌다는 진리를 잘 설명하고 있다. 간단히 줄거리를 살펴보자.
소설의 주인공인 ‘당신’은 5층 빌딩은 족히 덮을 만한 앙코르와트 사원의 무화과나무 앞에 서 있다. 한때 새의 깃털쯤에 묻어온 씨앗에서 발아되었을, 하지만 이제는 누구도 그 근원을 어림할 수 없을 웅대한 생명체 앞에서, 당신은 시간이 흘러가는 소리를 듣고 있다.
당신은 생각한다. 무엇이 당신을 이곳으로 오게 했는가. 어쩌면 그것은 바로 이 무화과나무가 아니었을까, 아니면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 바다를 건너온다는 저 검은나비떼들?
당신이 앙코르와트에 오게 된 것은 여자를 피해서이다. 여자는 임상심리사인 당신에게 정신치료를 받던 히스테리아(Hysteria) 환자였다. 당신은 수시로 칼을 들고 협박해오는 여자를 피해 앙코르와트로 도망쳐왔다. 당신이 앙코르와트로 향하던 날 당신은 거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사위가 죽은 듯한 적요 속에서 궁극에는 엄청난 일을 초래할 것 같은 아주 사소한 덜컥임을 감지했다. 나비효과를 떠올리면서 당신은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소설의 결미에서 당신은 주황색 장삼을 걸친 맨발의 노스님을 만난다. 승려가 짧은 영어로 말을 붙여온다. 뭘 보는가. 당신은 대답한다. 나무를 봅니다. 승려가 다시 묻는다. 뭘 보는가. 당신은 다시 대답한다. 시간을 봅니다. 당신은 말한다. 나무가 무섭습니다. 승려는 웃으며 대답한다.
세상 어디는 그렇지 않은가. 모든 사물의 틈새에는 그것을 부술 씨앗들이 자라고 있다네. 지금은 이런 모습이 이곳 타 프롬 사원에만 남아 있지만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밀림에서 뻗어나온 나무들이 앙코르의 모든 사원을 뒤덮고 있었지. 그때까지 나무는 두 가지 일을 했다네. 하나는 뿌리로 불상과 사원을 부수는 일이요. 또 하나는 그 뿌리로 사원과 불상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버텨주는 일이라네. 그렇게 나무와 부처가 서로 얽혀 9백 년을 견뎠다네.
당신은 스님을 말씀을 듣고 여자에게 전화를 걸어 말한다. 네 속으로 들어가 또아리를 틀고 싶다. 나무와 부처처럼 서로를 서서히 깨뜨리면서, 서로를 지탱하면서 살고 싶다.
흥미로운 사실은 소설 속에서 당신이 여자를 그리워하는 것은 여자의 육체이다.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육근(六根)에 의한 기억들과 일치한다. 하지만 소설 말미에서 화자는 “네 속으로 들어가 또아리를 틀고 싶다”고 말한다. 생성과 파멸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불상을 부수기도 하고 불상을 무너지지 않게 버텨주게 하기도 하는 나무는 여자의 다른 모습이다. 때문에 여자의 모습은 생성과 파멸을 관장하는 힌두교의 여신 칼리를 닮았다.
시·공간이 해체된다는 점도 이 소설이 지니는 특징 중 하나다. 나비효과는 한국에서 앙코르와트까지 연쇄반응으로 이어져 오고, 시간도 역행한다.(소설의 마지막 문장이 ‘당신의 시간이 다시 거꾸로 흐르고 있었다’인 것이 이를 잘 대변해준다.) 작가는 나비효과 이론을 통해‘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의 화엄사상을 교묘하게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유응오 기자 arche@jubul.co.kr
김영하 인터뷰
자연 숭고 가르쳐준 나무
“현대물리학과 불교는 상통”
“앙코르와트의 나무를 보고서 대자연 앞에서 인간의 문명은 얼마나 왜소한가를 실감했습니다. 앙코르와트 여행을 마치고 고국에 돌아오자마자 쓴 소설이 바로 ‘당신의 나무’입니다.”
창작경위에 대해 소설가 김영하 씨는 이같이 말하고 소설 속에 계속 언급하는 나비효과에 대해 “나비효과를 통해 현대물리학과 불교가 상통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천주교신자이지만 집에 캄보디아 등지에서 구입한 불상을 모셔둘 만큼 불교에 관심이 많다.
“한국문학에서 불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큽니다. 불교를 제재로 한 작품 중 문학적 성취도가 높은 작품이 많은데, 이는 문학적 제재의 원형이 많기 때문입니다.”
다종교사회에서의 종교역할과 관련 그는 “종교는 사회계급성과 매우 밀접한 연관관계가 있다고 본다”며 “황석영의 ‘손님’은 근대의 종교문제를 밀도 있게 다룬 작품”이라고 말했다.
유응오 기자 arche@jubul.co.kr
주간불교신문 845호 2005년 5월
http://www.bulgyonews.co.kr/news/1217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