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경전의 3대 축은 산스크리스트어 경전, 빨리어 경전, 그리고 한문 경전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주로 한문 경전을 통해 불교를 연구했다. 불교가 현재의 중국 땅에 전래되어 한문 경전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번역작업과는 그 규모나 격이 달랐다. 다양한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동원되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국가적인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한문 경전 속에서 불교, 유교, 도교, 선교 등의 수행체계가 융합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이것은 불교가 동아시아 지역에 빠르게 전파될 수 있었던 요인과 관련이 깊을 것이다.
우리 고조선에서 비롯한 수행문화가 아시아 전역에 전파되어 도교, 유교, 선교 등으로 분화되고 독특하게 발전되었다가, 한문 경전 작업을 통해 융합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불교를 수용할 수 있는 수행체계가 이미 고대 동아시아에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은 최치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난랑비서(鸞郎碑序)에서 고대 우리 민족의 수행경전인 천부삼경(天符三經) 속에 유불도(儒佛道) 삼교의 핵심이 있다고 했다. 이 사실을 역으로 유추하면, 한문 불교경전 속에서 고대 동양 수행정신문화의 총화를 엿볼 수 있다고 본다.
한문 경전의 뜻글자 하나하나에 수행의 의미가 담겨있다. 예를 들어,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란 명호 속에는 수행의 깊은 이치가 들어있다. 먼저 ‘관세음(觀世音)’이란 한문에는, 볼 수 없는 소리를 듣는다는 의미 속에 의식의 경계를 넘어 간다는 도리가 담겨있다. 보살(菩薩)은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로, 보리는 대도(大道)인 진리를 의미하고 살타는 대인(大人)을 뜻한다. 따라서 관세음보살이란 명칭이 주는 수행적 이치를 종합하면, 분별의 의식을 넘어가야만 절대적 정신세계로 넘어갈 수 있고, 그 속에서 나와 관계 맺고 변하는 세상을 두루 살피고 중도실상의 도리를 증득할 때 비로소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종교의 핵심에는 삶의 도리, 생명의 도리, 마음의 도리, 그리고 믿음의 도리가 들어있다. 불교의 수행공부는 한마디로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이라고 할 수 있다. 계정혜 삼학 속에 삶, 생명, 마음, 그리고 믿음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삼학이 완전히 하나로 융합되어야, 절대적 정신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절대적 정신세계는 고대 동양의 유불선도(儒佛仙道)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동양은 산업혁명 이후 서양이 주도한 급격한 산업화의 물결에 휩쓸리면서, 동양의 소중한 정신세계를 상실해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금까지 전래된 경전 속에 절대정신을 회복할 수 있는 내용들이 남아있다는 점이다.
나는 수행을 연구하면서 공자, 노자. 석가, 예수 등이 공통적으로 인간의 의식을 깨우고, 모든 사람이 대자유를 누리기를 염원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더불어 우리 민족의 수행경전인 천부삼경(天符三經) 속에 통합적인 수행체계가 있었다는 사실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다만 강조점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일상생활의 도리는 공자가 가장 자세히 말씀하고 있다. 노자는 생명 변화의 도리를, 예수는 믿음의 도리를 분명하게 말씀했다. 특히 석가모니는 가장 중심이 되는 마음의 도리에 관해 체계적으로 설법했다. 불행히도 현재 모든 종교를 아우르는 통합수행체계는 무너진 상태다. 다만 다행한 점은 불교의 수행체계 속에 통합의 문을 열 수 있는 핵심열쇠가 있다는 사실이다. 인공지능시대에 불교가 특히 의미가 있는 것은 상대적 물질세계와 이분법적 관념세계의 경계를 넘어가는 해결책이 유식학 속에 남아 있다는 점이다.
인공지능시대에 인간이 사람답게 사는 길은 수행의 이치가 이론상의 융합이 아닌, 삶속에서 실질적인 융합을 이루는 데 있다. 통합수행의 도리로 동서양의 수행체계를 삶속에 구현한다면, 우리는 강(强)인공지능시대에도 AI의 지배를 받기 보다는 그것을 역으로 활용해서 자유로운 생명력을 만끽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새로운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과 우리사회의 철저한 각성이 필요하다. 우리를 돌아보면, 우리의 불균형 또한 서구사회와 마찬가지로 물질 중심의 발전이 초래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에게 내재한 수행의 정신을 다시금 깨워서 인간의 물화(物化)를 막고, 조화로운 본심(本心)을 회복해야 할 문명사적 시점에 우리는 서있다.
한편 미래사회의 수행은 생활수행이 일반화될 것으로 본다. 삶이란 측면에서, 인류사회를 움직이는 원초적인 동력을 깊이 성찰해 보자. 공자는 인류사의 문제를 한마디로 음식남녀(飮食男女)라고 말씀했다. 많은 사람들이 대의명분으로 자신의 주장을 앞세우며 서로 대립하고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대부분은 밥그릇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기업문화에 수행문화를 접목하는 일이 시급하다. 모든 기업가가 정도경영(正道經營)을 한다면, 인류사회의 갈등과 싸움이 미연에 예방될 것이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후에도, 인류사회가 영원히 직면할 수밖에 없는 중대한 과제가 더 있다. 인간은 배가 부르면, 그 다음으로 찾는 것이 주색(酒色)과 오락(娛樂)이다. 특히 주색은 인간사회를 즐겁게 하고 생명관계를 이어주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기도 하지만, 과하면 작게는 개인과 가정을 망치고, 크게는 사회와 국가를 붕괴시키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고금의 모든 역사가 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고조선에서부터 기원하는 풍류도(風流道)의 정신을 일상의 삶속에 구현해서 우리의 문화와 의식 수준을 끌어올릴 필요성이 절실하다.
현재 한류(韓流)가 세상의 이목을 끌고 있지만, 정신이 빠진 한류는 유행가처럼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정신문화를 한류에 불어넣어야, 지속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최치원이 높이 평가한 풍류도는 본래 진리에 입각해 걸림이 없는 삶의 도리를 의미한다. 풍류는 불교의 무애(無碍)의 정신과 같다. 풍류도는 중도실상의 현실적 구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풍류문화는 주색잡기(酒色雜技)의 낮은 수준으로 전락한 느낌이 강하다. 모든 삶의 영역에 바른 도리에 입각해 생활문화를 시대에 맞게 새로 융합하고 보급한다면, 우리사회가 맑고 밝게 생기를 띠게 될 것이다. 불교의 수행정신을 융합인간교육으로 일깨우고, 다양한 콘텐츠로 불교의 수행문화를 구현하면 좋겠다. 수행문화가 사회를 새롭게 깨우는 데 큰 동력이 될 수 있다.
AI가 인류에게 초래할 수 있는 위기는 역으로 우리에게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의 통합을 요구하고 있다. 그 시작은 인간교육과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낮은 차원의 인간교육은 건강한 삶과 연결된다. 그리고 높은 차원의 인간교육은 수행문화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완전한 인간이 되는 수행의 목표는 전인교육(全人敎育)이라는 교육의 목표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지덕체(智德體)의 균형을 이룬 조화로운 인간은 수행의 원리와 방법을 인간교육으로 전환함으로써 완성될 수 있다. 전 세계의 갈등과 전쟁은 결국 인간의 정신을 새롭게 깨우는 교육과 문화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나는 수행문화를 활용한 융합사업을 우리나라를 살릴 수 있는 제2의 먹거리로 키울 수 있다고 본다. 수행교육문화, 생명건강 관련 사업, 첨단과학기술 등을 하나로 융합한다면, 우리는 전 세계를 선도하면서 인류의 평화와 발전을 동시에 이룰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진시황제가 불로초를 찾아 신하를 파견할 정도로 금수강산의 정기가 서려있는 곳이다. 3면이 바다이고 국토의 70퍼센트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토양, 물, 공기 등이 약용동식물이 자라기 좋은 환경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환경적 조건을 잘 활용하고, 수행의 문화전통을 현대적으로 잘 융합한다면, 엄청난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이 점에서, 전국의 명승지에 있는 전통 사찰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사찰은 새로운 융합사회를 준비하는 최고의 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수행은 최고의 예방의학이기도 하다. 현재 의료대란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예방의학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사실 수행을 생활화하면, 돌발적인 사고나 유전적 요인이 아니라면, 특별히 병원에 갈 일이 없다. 의학자들이 연구한 결과에 따라 건강결정요인을 백분율로 환산하면, 의료서비스는 8%, 환경은 20%, 그리고 유전은 20%를 차지한다. 나머지 52%는 생활습관이 좌우한다. 환경과 유전은 생활습관의 영향을 받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생활습관이 예방의학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생활습관은 다른 말로 하면, 카르마(Karma), 즉 업(業)이다. 업을 바꾸는 최고의 방법은 일시적인 의료혜택에 있지 않음은 누구나 알 수 있다. 근본적으로 건강한 생활습관을 몸과 마음과 삶에 체화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내가 수행을 미래 사업이라고 생각한 이유이기도 하다. 수행을 중심으로 모든 관련 사업을 융합하면 새로운 국가 동력을 창출할 수 있다.
현재 여러 사찰에서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프로그램이 주로 음식, 명상, 휴식 등에 치우쳐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불교가 새롭게 탈바꿈하고 동시에 세상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려면, 템플스테이에 수행문화를 접목시킨 보다 다양한 교육과 문화 프로그램이 개발되어야 한다. 필자도 이 칼럼을 통해 다양한 제안을 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나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모든 종교를 통섭하는 융합정신문화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내가 ‘에머슨하우스 교육연구소’를 운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에머슨은 이미 2세기 전에 청교도의 정신이 깊이 뿌리박힌 미국 동부지역에서 기독교의 경계를 넘어서, 동서양의 종교사상을 통합한 초절주의를 만들어냈다. 에머슨 전공자로서 나는 인공지능시대를 맞아 에머슨이 다하지 못한 온전한 융합문명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불교의 수행체계가 그 중심역할을 수행하는 데 가장 적당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인공지능시대에는 우리의 전통수행문화와 역사를 놓고 종교적으로 대립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은 AI에게 맡기면 된다. AI를 이용해 종교상의 통섭을 이룬다면, 사회의 갈등과 분쟁을 막을 수 있다. AI가 우리의 한계이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엄청난 기회를 제공하는 역설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AI가 우리의 장애가 될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해결사가 될 것인가는 우리 자신의 의지와 지혜에 달려있다.
■서동석 박사는
고려대학교 대학원 영문학과 졸업(문학박사)하고 현재 에머슨하우스 교육연구소 소장이다. 서남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재)대상문화재단 이사 겸 동천불교문화재단 상임이사 겸 반야연구소 소장, 고려대학교, 광운대학교, 단국대학교 강사를 역임했다.
http://www.bulgyonews.co.kr/news/38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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