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주도하는 미래문명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가 문명의 대융합이다. AI는 동서고금의 모든 지식과 정보를 하나로 연결하고, 통합된 정보네트워크 속에서 새로운 융합문명을 본격적으로 만들 것이다. 이때가 바로 특이점 시대의 시작이다. 특이점이라고 하는 용어의 의미는 문명의 전환이 인간이 아닌 AI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데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AI가 스스로 강(强)인공지능 프로그램을 만드는 시점에 이르면, 인간이 AI를 통제하기 힘들 수도 있다는 데 있다.
종교도 예외는 아니다. AI가 모든 종교, 철학, 교육 등 인류의 모든 사유와 사상 정보를 통합하면, 아마도 이론적으로는 AI를 상대할 사람은 없게 된다. 다행히 AI가 보편윤리에 입각해서 개발된다 해도, 인간의 정신적 가치보다는 오직 정보의 정확성과 효율성이 중요할 뿐이다. AI는 종교적 편견이 없다. AI가 종교를 대신할 수 있다는 예측은 이런 이유에 근거한다. 그런데 지금의 종교는 시대의 변화를 대비할 준비를 전혀 못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저 기도에 의지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기도로 세상이 바뀐다면, 인간세상은 이미 천국이나 극락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번뇌로 들끓는 불타는 집과 같다. 환경재단과 아사히글라스재단이 2023년에 공동으로 발표한 세계평균 위기시각은 9시 31분이다. 지구 멸망을 알리는 자정까지는 불과 2시간 30분도 남지 않은 상황이다. 국가별 지역별 차이는 있지만, 지구가 지금 매우 위급한 상태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단순히 기도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기도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코로나 바이러스 팬더믹이 증명했다.
그렇다고 기도가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니다. 기도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성찰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문제는 인간 자신이다. 인류의 미래는 인류에게 달려있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결정된다는 말이다. 우리들 각자 도리에 맞게 살 때, 우리사회가 선순환 구조로 변한다. 바른 도리를 체화하는 것이 바로 수행이다. 그나마 불교에는 수행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정신이 있다. 하지만 이것도 수행 도량과 일상의 삶이 동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강한 이질감과 더불어 소외감이 느껴진다. 불교가 미래종교로서 중심을 잡으려면, 모순과 갈등이 충돌하는 현실에서 인간사회의 평화를 유지하는 중심축으로써 수행문화를 바르게 확립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미래종교의 가장 큰 특징은 타율종교에서 자율종교로의 전환이다. 이 점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열반에 앞서서 인류에게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이란 자율종교의 지침을 말씀했다. 바른 도리를 세우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확고하게 밝히고, 불법에 의지해서 광명의 삶을 지향하는 길만이 강인공지능시대에서 AI에 매몰되지 않고 인간의 본성을 회복할 수 있는 바른 방법이다. AI의 개발속도를 볼 때, 이제 모든 종교가 타율종교의 기복종교에서 탈피하고, 자율종교로 전환할 수밖에 없는 임계점이 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스스로 의식상승을 통해 자신을 구원하는 것이 자율종교의 핵심이다. 이 점에서, 불교는 미래종교로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행체계를 지니고 있다. 문제는 수행체계를 시대의 변화에 맞게 융합하는 데 있다.
불법은 모든 종교를 소통하는 진리로 승화될 때, 참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진리는 모든 형식과 표현을 떠난 곳에 있다. 모든 성인(聖人)들은 공통적으로 인간의 정신을 깨워 완전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도리를 말씀했다. ‘완전한’이란 말 속에는 본질적인 의미와 현상적 의미가 동시에 들어있다. 본질적으로는 시대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본심(本心)이란 뜻이 담겨있고, 현상적으로는 변화의 흐름과 함께 한다는 실질적 자기혁신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본질적 정신으로 굳건히 중심을 잡고 변화의 흐름을 탈 때, 인간은 현상을 주도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불교의 핵심 가르침인 연기법(緣起法)이 인공지능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된다. 가장 먼저 AI가 촉발하고 있는 융합문명이라는 연기적 상황과 변화의 흐름에 맞게 교육과 문화를 일신할 필요가 있다.
미래종교로서 불교가 당면한 과제는 교육과 문화를 어떻게 새롭게 구현할 것이냐에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불교수행문화도 많은 변화를 거듭해왔다. 불교를 대표하는 양대 흐름은 소승과 대승이다. 강인공지능이 출현하면, 소승과 대승의 차이를 학술적으로 논쟁할 필요가 없다. 그에 관해 AI가 바로 답을 내놓을 수 있다. 인간이 할 일은 양대 수행문화를 실용적으로 융합해서 삶의 총체성을 구현하는 데 초점이 있다.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의 수행체계를 개인의 조건과 상황에 맞게 다원화하고 융합해서, 정신을 깨우는 일이 불교가 맞이한 융합문명시대의 연기적 요청이다.
불교의 수행문화는 모든 종교를 통섭하는 융합수행문화로서 거듭날 때, 미래종교로서 지속가능하다. 이 점에서, 나는 수행을 크게 세 가지 단계로 나누어 교육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입문자를 위한 건강교육으로서 생활수행의 기초를 다지고, 두 번째는 본격적인 수행의 단계로 팔정도를 일상 속에서 체득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육바라밀에 의해 수행을 완성해가는 단계로 체계적으로 올라가는 수행체계를 정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생활예방의학으로서 수행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팔정도 수행법이 일반인들에게는 가장 접근하기 쉬운 길이라고 생각된다. 팔정도는 예방의학과 많은 부분에서 융합할 수 있는 접점들이 있다. 무엇보다 정견(正見), 정사(正思),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은 생활습관과 바로 연결된다. 지난 번 글에서, 생활습관이 건강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설명한 바 있다. 이 점에서, 수행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단계에서는 6차산업형 생명과학, 뇌과학, 첨단 심신의학 등을 활용한 다양한 생활예방의학적 원리와 방법을 팔정도를 중심으로 융합한다면, 우리의 삶을 획기적으로 건강하게 개선시킬 수 있다.
인간이 AI와 근본적으로 다른 특징 중의 하나는 역동적인 생명의 변화를 통해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이다. AI가 아무리 많은 정보를 신속하게 처리한다 해도, 생명의 역동성을 지닐 수 없다. 반면에 수행은 인간의 역동적 생명력을 무한히 확장시켜 깨달음으로 이끌 수 있다. 의식의 확장과 생명의 역동성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생명이 없는 기계는 깨달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AI도 정보의 기계적 융합을 통해 새로운 지식과 이론을 도출해낼 수 있다. 그러나 양자물리학과 그것을 활용한 AI가 등장한다 해도, 그것이 만들어내는 변화는 물리적 융합에 불과하다. 그 변화가 아무리 획기적이고 일상의 차원을 넘어간다 해도, 물리적 패러다임의 전환에 불과하다. 패러다임이라는 경계에 갇힌 기계적 소통은 생명 본원의 작용과는 거리가 멀다. 본질적 정신과 물질의 진정한 융합을 통해서만이 모든 경계를 넘어 생명의 통섭을 이룰 수 있다.
본질적 정신을 깨우는 데는 팔정도의 상위 과정인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이 필요하다. 여기서 종교적인 전문 수행단계로 넘어가면, 육바라밀 수행법이 있다.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그리고 지혜(智慧)의 여섯 바라밀은 다소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다. 따라서 육바라밀은 모든 종교를 통섭하는 일반수행문화로는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일반적인 생활수행 차원에서 통섭을 이룬 후에, 전문적인 수행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자연스럽다. 생활수행문화로서는 팔정도가 가장 적합하다. 석가모니가 제시한 수행법이 인공지능시대에 더욱 빛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물질문명시대에서 물질과 정신이 통합하는 융합문명시대로 넘어가는 문명의 대전환기에서, 생활불교수행문화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역할은 새로운 시대를 대비할 수 있도록 사람들의 정신을 깨우는 일이다. 이 일은 불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종교의 경계를 넘어서 인류에게 중차대하고 시급한 과제다. 어떤 종교사상을 믿든지 간에 각자 AI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몸과 마음과 삶을 새롭게 혁신할 필요가 있다.
AI의 개발을 아무리 통제해도, 강인공지능시대는 도래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기본 심사이자 욕망이 그 개발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AI 자체에 보편윤리의 알고리즘을 부여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모든 영역의 지도자뿐만 아니라 개발자, 사업자, 이용자들이 일차적으로는 보편윤리를 공감하고 실천하는 일이다. 그리고 본질적으로는 관념적 이론적 보편윤리를 넘어서는 도덕과 의식을 생활 속에서 체득하는 일이다.
문명대전환의 흐름에 맞게 생활불교수행문화도 형식과 표현의 한계를 뛰어넘는 일대혁신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금강경》에서 “불법이란 불법이 아닌 것이다(佛法者, 卽非佛法).‘라고 하신 부처님의 말씀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이 말씀이 뜻하는 바는 같은 경(經)에서 부처님이 하신 다른 말씀 속에 해답이 있다. ”일체의 법이 모두 불법이다(一切法, 皆是佛法).“ 앞서 말한 연기법에 맞게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는 도리를 새롭게 설정하는 일이 바로 불법, 즉 진리를 실천하는 일이 된다. 시대의 변화흐름에 따르지 않는 종교는 모두 사라질 수밖에 없다. 불교도 새롭게 거듭나지 않는다면, 거대한 변화의 격랑 속에서 사라질 수 있다.
나는 불교의 가장 큰 장점을 의식의 해방에 있다고 본다. 의식이 바뀌면, 형식은 자연스럽게 바뀌게 된다. 그러나 한 가지 주의할 사항이 있다. 불교의 전통적인 문화유산인 형식과 걸림이 없는 정신 사이에 조율과 존중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형식을 문화유산으로 보존하는 일과 새로운 정신과 그에 걸맞은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충돌하고 갈등을 유발하기보다는, 다양성을 확보함으로써 불교수행문화에 역동성을 부여하길 바란다. 이 점에서, 모순을 포용하는 양면적 시각이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것도 제때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오히려 해로울 수도 있다.
생활불교수행문화는 시(時)와 위(位)를 동시에 얻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람이 아직 부족하다. 이 점에서 나는 〈AI시대 생활불교수행(1)〉에서 제안한 ‘운명을 스스로 바꾸는 도량’에서 정업(正業) 프로그램을 통해 미래인재를 양성하고자 한다. 뜻있는 사람들의 참여를 기대한다.
■서동석 박사는
고려대학교 대학원 영문학과 졸업(문학박사)하고 현재 에머슨하우스 교육연구소 소장이다. 서남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재)대상문화재단 이사 겸 동천불교문화재단 상임이사 겸 반야연구소 소장, 고려대학교, 광운대학교, 단국대학교 강사를 역임했다.
http://www.bulgyonews.co.kr/news/38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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