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부처님오신날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길 필요가 있다. 종교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삶의 바른 길을 제시하는 데 있다. 부처님은 탄생하는 순간부터 존재의 의미를 세상에 외쳤다.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 존재는 존엄하며, 육도(六道) 윤회의 고통에 상관없이 본심(本心)의 참나는 불생불멸하다는 진리를 온 우주에 알렸다. 부처님의 전생담과 전법의 일화를 담은 《팔상록》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세상에 오신 인연은 모든 인연중생들과 함께 완전한 깨달음의 세계를 구현하려는 원력 때문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도 깨달음의 인연 때문이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불연(佛緣)이 있었다. 나는 9개월 유복자로 태어났다. 내가 어느 정도 성장한 이후에 들은 얘기가 있다. 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어떤 스님이 찾아와 어머니에게 어린 나를 절에 팔라고 했다. 물론 돈을 받고 파는 것이 아니라, 의식상으로 절에 의탁하라는 의미였다. 절에서 생활한 적은 없지만, 어린 시절 내 아명은 ‘판석’이었다. 내 기억에는 없는 일들이다. 깨달음의 인연 때문인지, 나는 인생의 황금기를 참나를 찾아 헤맸다. 그러한 인연의 결과로 반야연구소에서 비록 2년이란 짧은 기간 동안이나마 불교의 진리와 수행법을 전문적으로 연구할 수 있었다. 지금 내가 수행문화전문가로 활동하는 것은 그때 얻은 지혜의 자양분 덕분이다.
또한 나는 에머슨을 전공한 덕분에 동서양의 여러 종교를 섭렵했다. 그 결과, 모든 성인들의 가르침이 방법과 표현이 다를 뿐 공통적으로 깨달음을 위한 길을 제시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깨달음의 마지막 퍼즐을 맞추는 핵심 열쇠가 있었다. 바로 인간의 자의식에 가려진 본마음을 깨우는 일이다. AI시대 불교가 미래종교로서 의미가 있는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공지능신경망이 아무리 발전을 해도 인간의 의식 속에 내재한 불성(佛性)을 초월할 수는 없다.
부처님의 말씀 속에는 생사윤회의 원인과 그로부터 벗어나는 도리와 구체적인 방법에 관한 분명한 해답이 있다. 우리는 욕망의 세계에 살고 있다. 욕계(欲界)는 서로 다른 욕망들이 충돌하며 괴로움을 끝없이 양산하는 곳이다. 이원적 상대성을 지닌 모순이 사바세계를 형성하는 기본 원리다. 따라서 양극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들이 계속해서 또 다른 모순을 야기하는 것이 현상세계의 모습이다. 때문에 상대적인 의식과 물질의 경계 안에서 최적화된 AI는 아무리 발전해도 물리적 프레임 속에 갇힐 수밖에 없다. 무의식의 경계를 넘어갈 수 없기 때문에, AI는 무명(無明)에서 비롯된 인간의 근본적인 괴로움을 해결할 수 없다.
부처님이 위대한 이유는 바로 의식의 경계를 넘어가는 방법을 찾고, 본심의 광명(光明)을 회복했으며, 더 나아가 세상에 깨달음의 인연을 확고하게 심었다는 점이다. 종교가 사라질 수 있다고 예측되는 인공지능시대에도, 불교가 살아남을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부처님은 중생의 깊은 무의식을 깨우기 위해 의학적 방법을 동원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완성한 이후에 녹야원에서 다섯 제자에게 처음으로 설법한 사성제(四聖諦)는 병의 진단, 원인 파악, 치료의 목표, 그리고 최종적으로 치료방법을 체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점에서, 부처님은 삼계도사(三界導師)로서 모든 생명 존재의 병을 치료하는 진정한 의사라고 할 수 있다.
사성제의 첫 번째 내용은 고제(苦諦)다. 괴로움은 우리를 비참하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지만, 묘하게도 그것이 주는 성스러운 가르침이 있다. 세상의 고통과 번뇌는 인간을 끊임없이 각성시키는 촉매제와 같다. 성찰을 통해 고통을 이겨내야,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번뇌가 많을수록 깨달음도 많고, 반야의 지혜도 깊고 커진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서 천국에 가고자 원하지만, 천국에는 깨달음을 자극하는 괴로움이 없다. 이 때문에 하늘의 신들도 이 세상을 부러워한다. 《화엄경》에 등장하는 온갖 신들이 선재동자를 돕는 이유도 깨달음의 인연을 심기 위함이다. 우리는 단순히 물질적 성공이 아닌, 깨달음의 장구한 인연으로 세상에 나왔다. 부처님과 우리는 같은 인연으로 맺어진 일심동체다.
그렇다면 괴로움을 어떻게 깨달음으로 전환할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부처님이 가르치신 두 번째 가르침은 집제(集諦)다. 집착은 생명을 형성하는 근본원인이자, 생명을 구속하는 장애이기도 하다. 물질문명이 극에 이르고 있는 인류사회에서는 집착과 욕망의 대상도 많고, 그 폭도 깊다. 물질문명이 발전할수록 업연종자(業緣種子)가 더욱 왜곡되기 때문에, 본심으로 돌아가기 어렵다. 우리 자신은 집착과 욕망으로 덮여 쌓인 의식과 육신의 덩어리가 하나로 결합한 결과다. 따라서 우리를 이루고 있는 인연화합은 온전하지 않다. 현상의 나와 본질의 내가 뒤섞여 혼란스러운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무명에서 생로병사에 이르는 십이인연(十二因緣)의 업연종자를 밝게 파악해야만, 괴로움의 원인을 바르게 알 수 있다.
괴로움과 그 원인의 실상을 설명한 이후에 부처님은 깨달음의 목표인 멸제(滅諦)를 말씀하셨다. 열반의 세계는 번뇌의 모든 불씨가 다 꺼진 상태를 말한다. 이것은 허무한 상태가 아니다. 마치 불교를 상징하는 연꽃이 흙탕물 속에서 자라나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것처럼, 의식이 청정하여 어떤 작용에도 걸림이 없는 대자유의 경지다. 해탈의 입장에서는 깨달음도 없고 깨달을 바도 없다. 따라서 윤회도 없고, 중생과 부처의 경계도 없다. 그러나 이것은 깨달은 이후의 일이다. 깨닫지 않은 상태에서는 끝없는 의식의 전변과 그에 상응하는 생사윤회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윤회의 유무를 가지고 논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중요한 것은 번뇌를 여의고 자유로운 상태에 있는 지 항시 자신을 점검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부처님은 깨달음의 목표로 가는 바른 길인 도제(道諦)를 말씀했다. 부처님이 제시한 구체적인 방법은 팔정도(八正道)다. 정견(正見), 정사(正思),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그리고 정정(正定)이다. 팔정도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다음 기회에 하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를 정(正)’의 의미다. 바름은 바로 중도(中道)를 의미한다. 중도는 다른 말로 하면 진리이자 진실이다. 본질 측면의 진리는 청정무구하고 고요한 상태이고, 현상 측면의 진실은 상황에 따라 중심이 적절하게 이동하는 생기발랄한 상태다. 표현과 정도는 다르지만, 성인들은 중도의 의미에 해당하는 말씀을 공통적으로 했다.
우리가 절에 가는 진정한 의미는 깨달음에 이르는 부처님의 말씀을 믿고 행하는 데 있다. 복을 빌러 절에 가는 사람은 불교를 잘 모르는 것과 같다. 만약 불법을 제대로 알고 믿고 행한다면, 영원한 복을 스스로 짓고 받을 수 있다. 그리 되면, 자신이 처한 곳이 부처님 도량이 아닌 곳에 없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고요한 절에 가도 시끄러운 세속의 번뇌 속에 있는 상태와 다를 것이 없다. 불법은 형식에 있지 않고, 모든 것을 통섭하는 자유로운 정신에 있다. AI시대에 맞게 불법의 참뜻으로 불교를 다시 세울 때가 되었다.
지금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종교 전쟁은 종교의 참뜻을 모르는 데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진리는 특정세력이 전유할 수 없다. 어떤 종교가 진리를 사유(私有)할 수 있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라 물리적 경계가 있는 이념체계에 불과하다. 진리는 마치 허공처럼 경계가 없다. 모든 성인은 사랑과 자비로 모든 경계를 허물고, 모든 존재를 포용했다.
모든 종교의 말씀 중에서 부처님의 말씀이 가장 솔직하다. 부처님은 진리의 실상이 표현과 형식에 있지 않음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금강경》에 “만약 모습으로 나를 보려하거나, 음성으로 나를 구하려 하면, 이 사람은 사도를 행하는 것이니, 여래를 볼 수 없을 것이다(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라는 사구게(四句偈)가 나온다. 이 말씀의 뜻은 모든 종교에 해당하는 진리다. 특정한 표현이나 형식으로 종교를 제한하는 사람은 절대로 진리에 이를 수 없다. 부처님은 불교의 표현과 형식을 거부함으로써, 역으로 불교의 진리를 제대로 밝혔다.
경전을 보면,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부처님이 설법 중에 제자나 보살들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면서 미래 어느 때에 성불할 것이라고 말씀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런데 의아하게도 관세음보살, 보현보살 등의 대보살들에게는 그런 말씀을 하지 않는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어느 순간에 알게 되었다. 대보살은 이미 성불한 화신불(化身佛)이다. 불보살들이 세상에 출현하는 이유는 모든 중생을 구하겠다는 원력과 그 인연 때문이다. 경전은 마치 무수한 불보살들이 중생구제의 대연극을 펼치는 대하드라마와 같다.
불보살들이 세상에 출현하는 인연을 역으로 생각해보면, 작은 복을 구하는 것으로는 절대로 성불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질적 부가 아무리 커도 그 복은 유한하고, 깨달음의 인연과 정신은 무한하다. 모든 존재가 시작한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중생구제의 대원력이 우주의 본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원력에 우리가 동참해야 그 힘을 받을 수 있다. 우리의 뜻과 우주의 본심인 불보살의 뜻이 하나가 되어 작용할 때, 중생구제의 대업이 완수된다. 이 점에서, 종교가 있건 없건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해서 부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나는 불교가 다시 태어나기를 바란다. 그 시작은 교육이다. AI시대에 맞는 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인재양성을 할 때다. 미래의 불교는 재가자 중심의 생활불교라고 할 수 있다. 생활불교가 활성화되면, 전문적으로 수행을 하고자 하는 출가자들이 자연스럽게 증가하게 된다. 사부대중이 하나가 될 때, 진정한 승가의 모습을 갖출 것이다. AI시대 융합문명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경계를 허물고 하나가 되는 융합시스템이다. 경계에 갇힌 종교는 AI가 대신할 수 있다. 그러나 불교는 모든 경계를 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변화에 맞게 형식을 바꾸는 것이 인연법의 도리에 맞다. 융합시대의 흐름과 요구에 맞게 불교의 교육시스템을 새롭게 융합하는 일은 부처님의 정신을 진정으로 구현하는 중차대한 과제다.
서동석 박사
■서동석 박사는
고려대학교 대학원 영문학과 졸업(문학박사)하고 현재 에머슨하우스 교육연구소 소장이다. 서남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재)대상문화재단 이사 겸 동천불교문화재단 상임이사 겸 반야연구소 소장, 고려대학교, 광운대학교, 단국대학교 강사를 역임했다.
http://www.bulgyonews.co.kr/news/38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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