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공부의 기본은 계정혜 삼학(三學)이다. 계(戒)는 정(定)의 토대고, 정은 혜(慧)의 관문이다. 수행의 결과는 계정(戒定)을 통해 지혜를 얻는 데 달려있다. 지나치게 계율에 집착하면, 부분에 막혀 전체를 보지 못한다. 또한 과도하게 선정에 몰두하면, 선정락(禪定樂)에 빠져 헤어 나오기 힘들다. 계(戒)와 정(定)을 통해 확보한 수행의 힘으로 부처님 말씀을 일상에서 관(觀)하는 습관이 체득되고 지혜가 성숙될 때, 최종 목적지인 완전한 지혜에 이를 수 있다. 수행에 입문한 초보 수행자는 계정혜 중에서 특히 계율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수행은 운전에 비유할 수 있다.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서는 먼저 운전법규와 기본 실기를 배우고, 정해진 방식에 따라 시행하는 운전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시험장은 외부적 상황이 배제된 공간이다. 그러나 실제 운전을 하는 도로에는 예기치 못한 변수들로 가득하다. 돌발적인 상황으로 인해, 시험장에서처럼 운전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교통 흐름이 운전 규칙에 우선할 때는, 융통성을 발휘해서 상황에 맞게 운전하는 것이 안전하다.
수행도 이와 같다. 수행의 기초는 엄격한 계율을 통해 굳건하게 다져진다. 기본적으로 오계(五戒), 즉 불살생(不殺生), 불투도(不偸盜), 불사음(不邪陰), 불망어(不妄語), 그리고 불음주(不飮酒)는 심신의 청정성을 회복하는 데 필수적이다. 불도의 완성은 복(福)과 지혜가 겸비돼야 가능한데, 오계를 어기면 어길수록 복과 지혜를 줄어들게 만드는 상황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오계를 지키지 않은 결과로, 심신이 탁해지고 각종 마장(魔障)이 불현 듯 엄습하기 때문이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의 이치가 수행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오계를 어기면, 그에 상응하는 업을 받게 된다. 대표적인 예를 들어 보면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과보는 단명(短命)이나 각종 병고(病苦)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과보로는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얻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음행(淫行)의 과보로는 무엇보다 남편이나 아내의 품행이 바르지 않는 인연을 만나게 된다. 세속에 사는 사람들은 특히 삿된 사음(邪陰)에 빠지기 쉽다. 사음을 경책하는 대표적인 책으로 《불가록(不可錄)》을 들 수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일화들은 누구나 깊이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헛된 말을 하는 과보로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비방을 당하거나, 가까운 친구를 잃을 수 있다. 술을 즐기면, 심신이 탁해지고 판단력이 흐려지는 과보를 받을 수 있다.
오계를 범한 과보가 무서운 것은 그로 인해 무명(無明)의 원인이 되는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이 의식 속에 뿌리를 내리기 때문이다. 자신이 범한 잘못된 습성의 종류와 정도에 따라 과보로 만나게 되는 악연의 폭과 세력이 달라진다. 따라서 수행에 방해가 되는 업연을 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 원인이 되는 종자(鍾子)를 제거하는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몸과 마음과 삶에 박힌 독소를 제거하는 일은 수행의 첫걸음이다. 가장 먼저 자신이 지은 죄를 참회하는 것이 순리다. 지은 죄가 많이 쌓인 사람이 복과 지혜를 구하는 것은 연기법의 이치에 맞지 않다. 자신의 죄는 현재 자신이 받고 있는 고통을 역으로 성찰하면 알 수 있다. 참회하지 않는 사람은 수행을 해도 장애가 많거나, 잘못된 길로 나아가기 쉽다.
수행자에게도 오계를 지키지 못할 상황은 존재한다. 불투도(不偸盜), 불사음(不邪陰), 그리고 불망어(不妄語)는 누구나 인정하고 반박할 수 없는 계율이다. 그러나 불살생(不殺生)과 불음주(不飮酒)의 계율은 경우에 따라서 논쟁의 여지가 있다. 우선 불살생의 계율이 가장 문제가 되는 경우는 적과 대치해서 자신과 가족 그리고 사회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불가피할 때다. 이 경우에 살생의 죄는 합법적으로 면책될 수 있지만, 그로 인한 업연은 피할 수 없다. 불살생은 또한 육식과 관련된 경우에도 논란이 된다. 이때는 건강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채식을 주로 하는 출가수행자는 사회에 나올 때는 적절한 육식을 통해 영양의 불균형을 예방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잡식(雜食)을 주로 하는 재가수행자는 정기적으로 절에 들어가서 채식을 하는 것이 몸의 균형을 맞추는 데 도움이 된다.
수행에서 채식을 주장하지만, 엄밀히 관찰하면, 야채 속에서도 엄청난 미생물들이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수많은 생명의 희생 덕분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생명을 구제하겠다는 서원을 세워야 완전한 깨달음이 가능한 이유는 이러한 생명인연의 굴레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육식이나 채식이 아니라, 건강식이다. 영양이 균형을 이룰 때, 수행의 힘을 크게 받을 수 있다. 부처님도 세상에서 가장 질 좋은 음식 덕분에 기력을 회복하고, 마지막 깨달음에 들어가셨다. 또한 성도(成道) 이후 중생구제에 나설 때에도 공양을 받는 대로 드셨다.
또 다른 논쟁거리로 음주가 있다. 체질적으로 알코올을 분해하는 능력이 없는 사람을 제외하고, 몸 상태에 따라서는 적절히 조절하면 술은 좋은 음식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데 적당한 술은 윤활유 역할을 한다. 수행이 완성된 사람은 술에 의해 장애를 받지 않는다. 수행 중인 사람들도 때로는 전법의 수단으로 술을 할 수 있다. 시절인연에 따라 적절히 하는 것은 수행과정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음주도 연기적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집중수행을 할 때는, 금주가 철칙이다. 선정의 상태로 가기 위해서는, 청정무구한 심신의 상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수행의 핵심 단계는 오온(五蘊), 즉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다. 이 다섯 단계를 하나하나 정화하면, 마침내는 청정한 본래의 마음이 드러난다. 계율은 색수(色受)의 정화에 필수적인 과정이다. 계율이 완성되면, 선정의 단계로 쉽게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선정의 과정은 계율보다 길고 깊고 폭넓다. 선정은 특히 상(想)을 끊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 폭류(暴流)와 같은 의식의 연상작용을 끊기 위해서는 방편이 필요하다. 방편으로 소리, 화두, 염불 등을 집중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자신의 인연에 맞는 집중대상을 찾는 것이 요점이다.
다만 선정수행에서 주의할 점들이 있다. 화두 참선인 경우에는 상기병(上氣病)에 주의한다. 의식 속에서 화두에 지나치게 집중하면, 기혈이 뇌에 침범해서 뇌출혈과 같은 뇌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 호흡으로 선정을 닦는 경우에도 기(氣)의 흐름이 지나치면, 각종 질병을 유발한다. 이 점에서, 전문수행자에게 의학지식은 필수적이다. 한편 선정이 깊어지면 신경이 활성화되면서,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한 환각을 느끼거나, 환청을 들을 수 있다. 이때는 모습이나 음성으로 여래를 구하면 찾을 수 없다는 《금강경》의 경책을 깊이 반추한다. 사실 이러한 환각과 환청은 자신의 의식이 만들어낸 부처가 드러난 현상이다. 평소 부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해서, 자신이 만든 가짜 부처를 분별하는 지혜를 길러야겠다.
오온의 행식(行識) 단계에 이르면, 단순히 앉아서 선정을 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독립된 공간에서 하는 집중수행과 더불어, 현실 속에서 만행(萬行)을 통해 생동하는 생명의 기운과 삶의 지혜를 체득하는 일을 병행해야 한다. 위없는 깨달음은 모든 인연이 성숙될 때 가능하다. 이 점에서, 수행자들도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다양한 직업을 통해, 살아있는 지혜를 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참고로 일본과 대만의 스님들은 전문교육을 통해 각 분야에서 전문가로 활동하는 사례가 많다. 수행문화의 전문화와 더불어 대중화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절인연이다.
부처님의 전생담인 《팔상록(八相錄)》을 보면, 깨달음을 향한 장구한 인연이 어떠한지 엿볼 수 있다. 우리는 깨달음의 인연으로 사바세계에서 태어났다. 단순히 성공하기 위해 세상에 온 것은 아니다. 세속적인 성공은 필멸할 수밖에 없는 물질적 역할에 불과하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은 영원한 생명의 삶이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이 되고자 노력하기 보다는, 어떻게 사느냐에 집중해야 진리에 이를 수 있다. 물질적 역할은 진리의 삶에 이르는 수단일 뿐이다. 물론 수단이 중요하지만, 수단에 종속되면 본말이 전도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물질적 역할은 명사적(名詞的) 현상이다. 뭔가로 규정된 명사적 역할은 누군가 나를 대신할 수 있다. 물질적 성공은 잠시의 편안함을 줄 뿐이다. 역할에 필요한 지식은 고정된 대상을 전제로 성립한다면, 지혜는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생명현상에 대한 통찰이다. 정해진 운명이 있다고 보는 시각으로는 명사적 관념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반면에 불교의 지혜는 일체의 관념을 깨고 참된 자유를 지향한다. 따라서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안정 등의 물질적 추구보다는, 어떤 삶을 영위하느냐가 깨달음에 중요하다. 일체지(一切智)를 성취하면, 세상에서 못 이룰 일은 없다.
영원한 생명은 동사적(動詞的) 흐름이다. 동사적 흐름이란 일체의 역할과 존재에 걸림이 없는 상태, 즉 무아(無我)다. 따라서 무아는 명사적 존재에서 동사적 삶으로의 전환이다. 순간순간 독특하게 생동하는 동사적 삶은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다. 영원한 삶만이 있으므로, 존재 아닌 존재가 된다. 그러므로 진아(眞我)란 표현은 특별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무아의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걸림 없는 자발적인 삶 자체를 뜻한다.
모든 수행 방편은 최후에는 버려야 할 대상이다. 수행의 대상은 고해의 바다를 건너 피안으로 가는 배의 역할을 할 뿐이다. 선정도 지혜를 구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대승의 지혜는 세상을 구하는 자비의 지혜다. 《현관장엄론(現觀莊嚴論)》에서 미륵보살님은 “지혜는 삼유에 머물지 않고, 자비는 열반에 들지 않는다(智不住三有, 悲不入涅槃).”고 말씀했다. 대보살들이 삼유, 즉 삼계(三界)를 뛰어 넘는 지혜를 갖추고, 삼계에 머물러 자비행을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수정(修定)이 경계 안의 마음집중이라면, 지혜수행은 경계에서 자유로운 통찰력의 함양이다. 공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만사를 아우르는 일이관지(一以貫之)의 지혜를 닦는 것이다. 따라서 운명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방법은 고정된 무엇을 소망하는 기도가 아닌, 참된 자유를 갈망하는 수행이다. 수행의 원리는 세상경영의 원리이기도 하다. 도리에 맞지 않게 무엇을 갈망하는 태도는 수행뿐만 아니라, 사회를 망치는 원인이 된다. 우리 사회에 지혜수행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서동석 박사는
고려대학교 대학원 영문학과를 졸업(문학박사)했고, 현재 에머슨하우스 교육연구소 소장이다. 서남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재)대상문화재단 이사 겸 동천불교문화재단 상임이사 겸 반야연구소 소장, 고려대학교, 광운대학교, 단국대학교 강사 등을 역임했다. AI시대 융합문명사회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인간교육과 수행에 관한 집필과 연구개발을 주로 하고 있다.
http://www.bulgyonews.co.kr/news/38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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