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역할은 시대마다 차이가 있다. 그러나 시대를 초월해서 종교가 갖는 근본적인 의미는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는 데 있다. 영혼의 구원은 단순히 죽음에 이르러 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더 소중하다. 사회가 혼란할수록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진리의 세계로 안내하는 일은 더욱 중요해진다. 호국불교(護國佛敎)로서 한국불교는 우리민족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민족혼을 지키는 일에 앞장서왔다. 무엇보다 선지식(善知識)들이 중요한 시기마다 나타나, 불법(佛法)을 지켜왔다.
부처님의 말씀은 이론에 불과한 사상이 아니라, 실제적인 삶의 변화에 관한 실증적 가르침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불교는 부처님의 실천적 불법을 잇는 불맥(佛脈)을 찾기 힘들다. 지금 시중에 수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소승과 대승에 관한 경전, 논설 등은 대부분 시대변화의 핵심을 꿰어서 사회를 바르게 인도하는 실질적 역할은 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핵심을 지적하는 사람도 소소한 영역에서 자기만족에 안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 사회는 대혼란의 상태에 있다. 혼란의 시기에 바른 길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한국불교는 ‘으뜸의 가르침’인 종교(宗敎)로서 자격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는 산업화 과정에서 물질적 부(富)에 관한 기독교적 윤리를 제공하는 교육시스템을 통해 크게 발전했다. 반면에 불교는 산업화에 대한 대비도, 적응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 결과, 현재 그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다른 민족종교도 상황은 비슷하다.
현재 세상은 물질문명의 시대에서 물질문화와 정신문화가 통합하는 융합문명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물질과학의 총아인 AI가 오히려 물질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면서, 기존의 경제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 만사가 극에 이르면 반전이 일어나는 것처럼, 물질문화가 극에 달하자 정신문화가 반작용으로 힘을 얻고 있다. 부처님 법으로 세상의 어둠을 밝히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각성이 필수적이다. 소승의 방법으로 우리 자신을 바로 세우고, 나아가 대승의 정신으로 사회개혁에 앞장설 때다. 종교의 사회 참여라는 점에서, 산업화 과정에서 기독교의 역할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일부 개신교의 지나친 정치편향은 반면교사로 삼아야겠다. 종교는 정치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사회 전체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데 초점을 두어야 강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이제 변화의 중심이 물질에서 정신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에, 불교가 문명전환을 선도할 때가 되었다. 나는 《융합창의력과 인간교육》에서 부처님이 제시한 수행 방법만이 AI가 초래할 수 있는 인류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고, 서양과학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설명했다. 또한 수행문화와 인간교육을 활용해서 우리 사회의 긴급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여러 가지 실질적인 대안도 제시한 바 있다.
한국불교가 문명의 전환을 이끌 준비가 되어있는지 깊이 성찰해보자. 참으로 애석한 일이지만, 불교의 내부 상황을 보면, 대부분의 수행자들이 현실에 안주해서 사회혁신의 의지가 약하다. 이대로 가면 한국불교는 거대한 변화의 흐름에 의해 사라질 수도 있다. 이것은 비단 불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종교에 해당되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이대로 방관하면, 아마도 미래에는 AI가 종교를 대신해서 인간의 모든 고민거리를 상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미 여러 글에서 밝혔지만, 수행을 연구하면서 수행이 앞으로 미래의 첨단사업이 될 것이란 확신을 받았다. 여기에는 내가 에머슨 전공자라는 사실도 한몫하고 있다. 동서양의 종교사상을 통합한 에머슨의 초절주의는 미국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바 있다. 그러나 에머슨의 통합사상은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의 완전한 융합을 이끌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나는 부처님의 수행법을 연구하면서,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서양의 철학, 종교, 과학 등으로는 인간의 의식을 완전히 해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록 에머슨이 서양의 한계를 동양에서 찾았지만, 인간의 의식을 완전히 해방시키는 부처님의 수행법을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었다.
지금 과학은 물질의 경계를 넘어 한편으로 천문학적인 거대 우주공간으로, 다른 한편으로 극미한 초미립자 세계로 진입하고 있다. 과학이 극적으로 전환될수록, 관념과 물질 중심의 서양교육이 한계를 드러내면서, 이분법적 세계관은 무너지고 있다. 물리학 이론 중에서 그나마 아인슈타인이 완성하지 못한 통일장 이론에서 물질과 관념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이상향은 대우주를 하나로 연결하려는 취지에서 어느 정도 화엄세계와 비슷하다.
한편 서양의 이분법적인 관념체계는 물질과학의 발전에는 크게 도움이 되었지만, 물질과학에 근거한 산업문명은 빈부의 양극화를 극도로 심화시켰다. 한정된 부와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사람들은 서로 지나치게 경쟁할 수밖에 없다. 효율성이 떨어진 사람은 집단에서 소외되거나 낙오된다. 불균형이 심화되는 과정에서 많은 사회문제들이 야기되기 마련이다. 우리 사회가 지금 혼란해진 근원적 원인도 물질 중심의 경제적 가치체계에 우리가 너무 경도된 점에 있다.
정치적 분열의 원인도 경제적 문제와 연결된다. 밥그릇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으면, 사회 혼란은 계속될 수 있다. 이 점에서, 미래의 종교는 단순히 정신적 위안에 그치지 말고, 진정한 대승경제 창출에 일조할 수 있는 세계관을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해답은 정신문화에 있다. 바로 이 점에서, 불교의 수행법은 미래의 첨단사업이 될 수 있는 핵심 노하우를 담고 있다.
이제 인류는 좁은 지구에서 서로 싸우지 말고, 시선을 극대(極大)와 극소(極小)의 양방면으로 전환할 때가 되었다.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리 사회의 갈등은 너무나도 하찮은 사소한 분쟁에 불과하다. 반대로 미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부처님의 말씀처럼, 나를 이루고 있는 고정된 주체는 없다. 불교는 현상과 본질의 양면에서 삶의 근원을 통찰하고 있다. 우리가 소중이 여기는 모든 것은 사실 오온(五蘊)의 작용으로 인한 일시적인 환상일 뿐이다. 무아(無我)가 우리의 실상이므로, 우리가 서로 죽일 듯이 싸우는 것은 모두 부질없는 일이다. 반면에 환영 같은 삶은 우리가 직면한 실존적 현실이기도 하다. 따라서 환상을 통찰하고 진실을 추구하는 수행법은 인공지능사회에서 실현될 가상세계에서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된다.
아무리 불교에 좋은 점이 많아도, 그것을 활용하지 못하면 공염불에 불과하다. 나는 이미 앞선 칼럼을 통해 불교계의 발전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이제 단순히 의견을 제시하는 차원을 넘어, 실천에 옮길 때가 왔다. 시몽 스님과의 인연이 있던 인천 대복사에서, 대장정을 위한 작은 모임을 시작했다. 지난해 11월과 12월 두 차례 특강을 통해, 이 시대에 수행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11월 24일 1차 특강의 주제는 〈AI시대 어떻게 살 것인가〉였고. 12월 22일의 주제는 〈수행과 건강한 삶〉이었다. 비록 모인 사람들은 20여명에 불과했지만, 큰 호응을 받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생활불교의 가능성을 느꼈다.
생활불교수행을 본격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2025년에 들어서서 곧 바로 1월 5일에 〈수행문화와 지역발전방안〉을 발표했다. 수행문화를 활용해서, 농촌/도시 문제, 인구문제, 인간교육문제, 사회갈등문제, 장례문제, 물질과 관념의 한계를 넘는 융합창의력 향상 등을 해결할 수 있음을 설명했다.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수행콘텐츠 불사, 요람에서 무덤까지 인생전환기 수행프로그램, 팔정도 기반 유아교육프로그램, 정업(正業)프로그램, 웰리빙/웰다잉 프로그램,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의 다원화/전문화, 예방의학 차원의 주기적 건강관리프로그램, 장단기 출가프로그램, 수행건강마을 조성프로그램, 수행공동체 융합플랫폼 등을 제시했다. 1월 19일에는 이 중에서 현재 주어진 상황에서 실현 가능한 한두 가지를 선택해서,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발표한다.
모든 사업을 한꺼번에 할 수는 없다. 실현 가능한 것을 선별해서 단계적으로 실천하고자 한다. 우선 강연, 수행문화 불사 등을 통해 뜻이 있는 분들을 모을 예정이다. 진정으로 공익을 위하는 사람들이 10명만 모여도,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는 충분하다. 올곧은 울림은 우주를 관통하여 퍼지는 법이다. 하나의 사업에 중점을 두고 모델링을 충분히 한 후에, 수행문화 콘텐츠와 프로그램을 전국에 보급하면 된다. 이런 방식으로 사업을 확대하면, 모든 프로그램을 실현시킬 수 있다. 모델링 사업은 나중에 공익법인으로 전환해서 사회에 환원할 것이다.
나는 수행사업을 통해 세상에 건강한 문화를 보급하는 것이 사회를 가장 안전하게 변화시키는 길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우리 사회를 바르게 변화시킨 연후에, 생활불교수행의 정신과 문화를 전 세계에 보급한다면, 인류의 평화와 공영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일은 개인의 업(業)을 개선시키는 데 탁월한 작용을 한다. 경전을 읽어보면, 항아의 모래와 같은 물질적인 불사의 공덕보다 단 한 마디의 반야의 지혜를 구하는 공덕이 더 크다고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양무제와 달마대사의 일화에서도 이 사실은 확인된다. 양무제는 나름 불심이 깊어서 여러 곳에 절을 짓는 등 큰 불사를 했다고 자부했다. 은근한 기대심리로 양무제는 달마대사에게 자신의 공덕이 얼마나 큰지 물어보았다. 하지만 달마대사는 양무제의 기대와는 반대로 공덕이 전혀 없다고 했다. 물질적 공덕은 언제고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달마대사는 일종의 화두를 던진 것인데, 양무제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우리 모두가 이런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행문화에 관련된 불사는 반야의 지혜를 구하는 것과 직결된다. 따라서 이 일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영원한 복을 짓는 것과 같다. 물질적 관념에 사로잡힌 현대인들을 깨우는 데는 부처님의 지혜를 알려주는 콘텐츠나 프로그램에 불사를 하는 것이 바른 방향이다. AI가 주도하는 산업 측면에서도, 수행문화 콘텐츠는 경제적 가치가 가장 높다. AI가 본격적으로 일상의 경제활동에 사용되면, 웬만한 전문직업은 AI가 대체 가능하다. 그러나 인간의 독창적인 지적 재산권은 AI가 대신하기 힘들다. 그 중에서도 수행은 AI가 할 수 없는 마지막 영역이다. 지혜를 밝히는 길만이 어두운 시대를 살아내는 비결이다.
■서동석 박사는
고려대학교 대학원 영문학과를 졸업(문학박사)했고, 현재 에머슨하우스 교육연구소 소장이다. 서남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재)대상문화재단 이사 겸 동천불교문화재단 상임이사 겸 반야연구소 소장, 고려대학교, 광운대학교, 단국대학교 강사 등을 역임했다. AI시대 융합문명사회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인간교육과 수행에 관한 집필과 연구개발을 주로 하고 있다.
http://www.bulgyonews.co.kr/news/38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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