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을 받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할 것이다. 인류는 오랫동안 신(神)에게 복을 기원했다. 하지만 복을 빈다고, 원하는 바가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복을 비는 행위에는 자신의 잘못이나 무지함을 신에게 의탁해서 해소하려는 심사가 상당히 깔려있다. AI시대에 맞게 기복(祈福)에서 탈피해서, 스스로 복을 짓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어떻게 해야 복을 받을 것인가가 관건이다.
절에서 하는 천도재 속에 작복불사의 개념이 있기는 하지만, 주로 죽은 영가의 힘으로 복을 구하는 정도다. 그러나 이제는 일반가정에서 제사가 사라지고 있을 정도로 세태가 변화고 있다. 아마도 앞으로 제사문화는 과거의 유물이 되거나, 특별한 문화적 행사가 될 수도 있다. 많은 절이 각종 재사를 통해서 운영비를 마련하고 있는데, 이대로 가면 사찰의 경제적 토대가 무너질 수도 있다. 나는 천도재의 대안으로 작복불사를 제안한다. 시대변화에 맞게 죽은 사람의 영혼에 의지하지 말고, 자신의 염원과 실천으로 복을 지어야 할 때가 되었다.
조상의 유전인자와 혼(魂)은 내 몸과 마음속에 있다. 그러므로 진정한 천도재의 의미는 자신의 몸과 마음과 삶을 청정하게 변화시키는 데 있다.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천도재가 바로 작복불사다. 내가 변화하면, 나의 삼세인과가 변하기 마련이다. 삼세인과를 부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완전히 깨달은 이후의 일이다. 의식이 혼탁한 사람이 삼세인과를 부정하는 것은 자신의 실체를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업의 현행(現行)은 부인할 수 없는 실존의 현상이다.
삼세인과의 근본이자 우주의 진리는, 부처님이 설파했듯이, 연기법이다. 달리 인연법이라고 한다. 과학적으로 말하면, 인과법이라고 할 수 있다. 원인이 있는 곳에 그에 해당하는 결과가 있다. 문제는 인식할 수 없는 수많은 원인들이 결과 속에 투영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인과법은 현상의 원인과 결과만을 얘기한다. 인연법으로도 불리는 연기법은 현상의 원인뿐만 아니라 무의식 속에 쌓여있는 인연의 종자(種子)까지 포함해서, 보다 근원적이고 총체적으로 결과를 얘기한다. 인연종자인 인(因)이 현상의 직접적인 원인인 연(緣)을 만나 현재의 법(法)이라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인연법을 철저히 성찰하면, 복을 받는 방법을 알 수 있다. 누대의 인연종자와 현재 자신이 짓고 있는 업(業)을 면밀히 살펴보면, 그에 해당하는 업의 결과로서 자신의 앞날을 알 수 있다.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앞날을 물을 필요가 없다. 지나치게 역술, 점, 신적 존재에게 의지하는 삶은 무지하거나, 혹은 도리에 맞지 않게 살고 있음을 반증한다. 미신에 의탁하는 심리 속에는 자신의 잘못을 신적 존재에게 돌리는 죄가 숨어 있다. 예를 들어, 잘 되면 내 탓이고, 잘못되면 조상 탓하는 것은 이런 심리와 무관하지 않다.
부처님이 업에 관해 한 말씀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자신이 지은 아주 작은 죄라도 언젠가 인(因)과 연(緣)이 만나면, 과보를 받게 된다. 이와 관련한 다른 성인(聖人)들의 말씀도 표현만 다르지 한결같은 뜻을 지니고 있다. 노자는 “하늘의 그물은 넓고 넓어서, 틈이 있는 듯해도 놓치는 일이 없다(天網恢恢, 疎而不失).”라고, 인과응보(因果應報)를 분명히 말씀했다. 노자뿐만 아니라 공자가 심득(心得)을 얻은 원천이 되는 주역(周易)에 재미있는 말씀이 있다. 지산겸(地山謙)의 단사(彖辭)에 이르기를, “귀신은 가득함을 해치고 겸손함에 복을 주고, 사람의 도는 가득함을 미워하고 겸손함을 좋아한다(鬼神害盈而福謙, 人道惡盈而好謙).”라고 했다. 인간이나 귀신이나 도리에 맞지 않게 부와 권력 등을 독점하는 것을 시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현재 자신이 짓고 있는 업은 현상을 통해 알 수 있지만, 무의식의 인연종자는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인생의 신비를 푸는 방법은 자신에게 있다. 자신이 처한 삶의 환경을 보면, 인연의 흐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은 잘못이 없고 착하게 사는 것 같은데, 뜻밖의 불행이 찾아온다면, 업연(業緣)이 발동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이 처한 삶의 환경, 만나는 사람들, 그동안 삶의 풍파 등을 종합적으로 성찰하면, 자신의 업연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공동체사회 속에는 공업중생(共業衆生)의 업연이 녹아들어 있다. 사회의 혼란은 우리의 업연이 함께 작용한 결과다. 따라서 사회를 바로 세우는 일은 우리 모두의 각성에 달려 있다.
앞선 칼럼에서, 불교가 새로운 시대변화를 이끌어낼 때라는 점을 강조했다. AI시대에 사회를 맑고 밝게 깨우는 데 작복불사는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 내가 먼저 바르게 깨어나서, 사회를 바른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데 작복불사의 진정한 의미가 있다. 개인의 복이 모여 확대되면, 전체 사회가 행복해지는 법이다. 그렇다면 이제 구체적으로 작복불사의 방법을 논의해보자.
나는 지난 1월 19일에 인천 대복사에서 작복불사에 관한 특강을 했다. 여기서 나는 크게 세 가지, 즉 ‘복(福)의 인연 심기,’ ‘참회의 염불수행,’ 그리고 ‘복을 나누는 보시’에 관한 주제로 강의를 했다. 지혜와 복덕이 함께 갖춰질 때, 수행은 완성된다. 특별한 능력과 인내심이 없는 한, 보통은 수행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될 때, 수행을 지속할 수 있다. 인생의 참된 의미는 진리의 깨달음에 있는 점에서, 수행할 수 있는 복은 최상의 복이다.
복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복의 인연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박복한 인생은 복의 인연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복의 인연을 심어야, 그 결실을 볼 수 있다. 따라서 먼저 복의 밭을 가꾸어야 한다. 복을 키울 수 있는 자신의 토양이 깨끗이 한 된 후에, 복의 씨앗이 잘 발화될 수 있다. 복전(福田)의 정화(淨化)에는 자신의 참회가 가장 효과적이다. 알고 지은 죄보다, 모르고 지은 죄가 더 많고 크기 때문이다. 자신의 업보(業報)를 참회하는 것은 인연법의 도리에 맞다. 인연의 그물망에 속에 있는 모든 생명의 원한을 해소하지 않고, 복을 기대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깨달음을 얻기 위함이다. 삶의 고통은 깨달음의 각성을 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유마경(維摩經)》에 “번뇌는 곧 보리다(煩惱卽菩提).”라는 말씀이 있다. 따라서 영원한 복을 짓는 핵심은 삶의 번뇌를 통해 지혜를 깨닫는 것이다. 이 세상에 갈등과 고통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해야 할 수행은 수많은 갈등을 조율해서, 고통을 행복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다.
다행히 대보살들이 스스로 지은 중생구제의 원력(願力)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대보살들에게 의지해서 안심하고 수행의 난관을 극복할 수 있다. 참회, 복 짓기, 수행 등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염불(念佛)이다. 염불은 관세음보살이 사바세계에 가장 적당한 수행법으로 제시한 이근원통(耳根圓通) 수행법이다. 예를 들어, 관세음보살, 보현보살, 지장보살 등과 같은 대보살 등의 명호를 소리를 내서 또는 마음속으로 염불하면 부처님의 원력과 상응하게 된다. 현대물리학에서 입증되었듯이, 집중대상의 의식수준이 높을수록 공조와 공명의 현상이 잘 이루어진다. 자신의 의지에서 나오는 자력(自力)과 대보살의 타력(他力)이 만나면, 불력(佛力)을 성취할 수 있다.
한문경전은 당대에 최고의 전문가들에 의해 뜻과 음이 조율되어 편찬되었다. 한편 훈민정음은 한자뿐만 아니라 모든 언어를 정확하게 발음할 수 있도록 창제되었다. 오행(五行)의 원리로 만들어진 우리말 염불소리와 진심이 어울리면서 내는 조화로운 파장은 본심(本心)을 깨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여기에 108배를 겸해서 한다면, 건강한 심신을 오래 유지하는 효과도 누릴 수 있다. 물론 자신의 역량에 맞게 하는 것이 좋다. 무리해서 욕심을 내면, 오히려 역효과를 보게 된다.
보다 적극적으로 복을 짓는 방법은 복을 베푸는 일이다. 보시에는 재보시(財布施), 법보시(法布施), 그리고 무외시(無畏施) 세 가지가 있다. 재보시는 물질을 베푸는 일이다. 물론 여기에도 도리가 있다. 주역 수뢰준(水雷屯), 구오(九五) 효사(爻辭)에, “적게 두고 올곧으면 길하고, 많이 두고 올곧으면 흉하다(小貞吉, 大貞凶).”라는 말씀이 있다. 자신의 상황에 맞게 베풀어야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절제하는 것이 옳다. 반대로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절제보다는 베푸는 데 중점을 두어야, 다른 사람들의 원성을 사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자신의 쾌락이 아니라, 널리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는 쪽으로 베풀 때, 진정한 복을 누릴 수 있다.
두려움을 없애주는 무외시는 도를 증득한 불보살만이 걸림 없이 할 수 있는 보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보시는 법보시다. 일상의 법보시는 바른 생각, 바른 말, 그리고 바른 행동을 통해 바른 도리를 실천하는 일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불법의 지혜를 콘텐츠로 구현하는 데 이바지하는 보시가 있다. AI시대는 물질적 대상보다 콘텐츠가 중요한 디지털문화의 시대다. 경전에서 무엇보다 강조하는 복은 위없는 지혜의 말씀을 받드는 일이 가져오는 복이다. 콘텐츠 보시를 통해 우리는 영원한 복을 받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불교가 살아남을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은 콘텐츠를 통해 진리의 말씀을 세상에 베푸는 법보시에 있다.
서원하는 바가 클수록 바른 행(行)이 나온다. 진정한 공덕은 행원(行願)이다. 위없는 진리를 얻고자 한다면, 불보살처럼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대서원(大誓願)을 세우고 실천해야 한다. 행원(行願)이 원만해질 때, 심행(心行) 상에서 공(空)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수행법에 연연하기보다는 공덕을 짓는 삶을 사는 데 집중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뭔가 특별한 수행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특별한 것은 없다. 오히려 그런 심사가 수행을 망친다. 평소 생각, 말, 행동 하나하나를 잘 살피는 것이 최고의 수행법이다. 평범한 일상을 도리에 맞게 살면 된다. 깨달음의 인연이 성숙해지고 때가 되면, 진리에 이르는 길은 스스로 다가온다.
물질적 부, 권세, 명예 등과 같은 복은 인연이 소멸하면 사라진다. 복진타락(福盡墮落)의 법칙에서 예외인 영원한 행복은 걸림이 없는 진리의 삶에 있다. 그러나 우리가 몸을 가지고 있는 한 현실에서 물질적 행복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므로 물질과 정신의 균형을 통해 삶이 안정을 찾은 연후에, 상대적인 물질과 관념을 초월한 영원한 진리의 깨달음을 추구해야겠다.
*작복불사, 수행법 특강/컨설팅 문의(eastosuh@daum.net)
■서동석 박사는
고려대학교 대학원 영문학과를 졸업(문학박사)했고, 현재 에머슨하우스 교육연구소 소장이다. 서남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재)대상문화재단 이사 겸 동천불교문화재단 상임이사 겸 반야연구소 소장, 고려대학교, 광운대학교, 단국대학교 강사 등을 역임했다. AI시대 융합문명사회를 준비하
http://www.bulgyonews.co.kr/news/38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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