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청소년기에 임진왜란을 다룬 책을 보면서 휴정스님(서산대사)과 유정스님(사명당)이 전쟁에 참여했다는 기록을 보고 매우 의아하게 생각했다. 본래 종교는 인류 전체를 구원하려고 만들어진 것이며 일개 국가를 보호하려고 만든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불자가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살생을 하지마라’는 불교의 기본 교리와 상충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랜 세월의 수행과 숙고를 거치면서 우주와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난 후에 불자나 승려의 전쟁 참여는 올바른 것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되던 초기에는 박해를 많이 받았으므로 그것을 무마하기 위해서 ‘불교는 나라의 안녕을 비는 훌륭한 종교’라는 것을 설파해서 왕실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의도한 것이 호국불교의 발단이었다. 그래서 신라에서는 팔관회라는 행사를 통하여 사망한 군인들의 명복을 빌면서 국가의 안녕을 빌었다. 고려시대는 왕실이 불교에 많이 의지했고 그래서 왕사나 국사 제도가 있었으며 그 후유증으로 고려 말기에는 승려가 국정을 농단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후유증으로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정책이 채택되어 불교를 억압했다. 그러다가 임진왜란이 터지자 승려들이 전쟁에 참여해서 나라를 구하는 공을 세우고 호국불교라는 사회적 인식이 재확립되었고 억불정책도 조금씩 완화 되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그 호국불교라는 말에 어울리지 않게 불교가 국가의 안위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
기독교의 교리는 한 번 죽으면 다시는 이 세상에 환생하지 않으므로 기독교인들은 굳이 나라의 안녕이나 발전에 크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러나 불교는 환생을 믿으며 그 환생이 모두 인연에 따라서 일어날 것이므로 만약에 환생한다면 자신과 수많은 인연이 맺어진 자신의 나라에서 환생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자신이 환생할 나라의 안녕과 발전에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국가의 안녕을 위해서 호국을 하려면 자칫 살생을 할 수도 있어서 불교의 교리에 상충할 수도 있으므로 오늘은 그 점에 대해서 논해보겠다.
주변의 어떤 사람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흔히 ‘무슨 복이 많아서 그런 일이 생겼을까?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봐.’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을 불교적으로 해석하면 전생에 좋은 공덕을 많이 쌓으면 후생에서 복을 받는다는 것이며 그 공덕 중에서 나라를 구하는 공덕이 공덕 중에서 최고라는 것을 의미한다. 공덕이라는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인데 그 종류에 따라서 가치에 급수가 있을 것이다. 지인이나 가까운 이웃에 도움을 주는 행위가 공덕의 기본이겠지만 그보다 마을이나 사회 전체에 도움이 되는 행위가 더 큰 공덕일 것이고, 더욱 더 큰 공덕은 국가 전체에 도움을 주는 것이며 그 중에서도 나라를 구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공덕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나라를 구하려면 독립군이 되어 싸우거나 외적의 침입에 대항해야 하고 그러면 수많은 살상을 해야 하므로 그것은 불교의 기본 가르침인 살생금지에 위반되는 모순에 빠진다. 그래서 우리는 살생에 대해서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밥상 위에 올라온 음식은 모두 살아 있던 것들이며 우리를 위해서 살생된 것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살생을 피할 수 없지만 그 살생이 정당한 것인지 아닌지를 구분해서 무분별한 살생은 금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불교도 무조건 살생을 금지할 것이 아니라 공덕이 되는 살생과 그러지 못한 살생으로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법률에는 정당방위에 의한 살생은 무죄로 인정한다. 그 정당방위에 의한 살생이 소위 정당한 살생에 해당된다. 테러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테러범을 죽이는 것은 수많은 선량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함이며 가축을 도살하는 것도 다른 사람의 건강이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므로 합당한 살생에 해당된다. 물론 전쟁에서 적을 살생하는 것도 나라를 구하기 위한 것이므로 살인죄가 아니라 정당방위에 해당된다.
이와 같은 논리는 종교에서도 성립되어야 한다. 불교의 기본 교리가 살생을 금하지만 더 큰 가치나 더 올바른 가치를 위해서는 예외적인 살생은 타당한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 불자라면 인간 살생은 물론 불법적인 사냥이나 취미로서 하는 사냥도 금해야 한다. 누군가가 죽을병에 걸렸는데 그것을 치료하기 위해서 산짐승이 필요하다면 사냥할 수도 있다. 살생은 좀 더 나은 가치를 실현할 때만 타당한 것으로 인정돼야 한다. 어차피 모든 동물은 다른 생명을 먹고 산다. 무조건 살생을 금지하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것이며 완벽하게 살생 금지 조항을 실천하려면 아예 안 태어나는 것밖에 다른 방법은 없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해탈하여 윤회를 벗어나 다시 안 태어나는 것이 최선이라고 여겨진다.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다른 생명의 살생이 정당화 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식탁에서 지나치게 다른 생명을 많이 섭취하는 것은 바람직한 행위가 아니다. 오직 건강과 수명 유지를 위해서 필요한 만큼만 섭취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요즈음 수없이 발생하는 비만, 고혈압, 당뇨, 암 등을 예방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적당한 양만 섭취하는 것이 종교 교리나 윤리에 적합할 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최선임을 명심하라. 종교인이 얼굴에 지나치게 윤기가 흐르거나 몸집이 비만하다면 반성하면서 과다한 음식 섭취를 억제해야 한다.
윤회를 믿는 불자라면 좋은 곳에서 환생하기 위해서 응당 공덕을 쌓아야 하고 그러려면 제일 큰 공덕인 나라를 구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라. 그와 반대로 나라를 망치는 사람들을 규탄하거나 처벌하는 일에 앞장 서는 것도 나라를 구하는 공덕에 해당하므로 그런 일에 적극 나선다면 후생에는 물론 어쩌면 이번 생에도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불교계 전체도 ‘호국불교’라는 이름에 걸맞게 나라를 구하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 나의 후손이 살아갈 뿐만 아니라 내가 환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이 나라의 안녕과 발전을 위해서 불자들은 모두 ‘호국불교’를 실천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극우 보수를 지향하는 기독교 일부 세력이 지나치게 정치에 관여하며 헌법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 그들이 교세의 확장을 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권력에 빌붙어서 이득을 구하기 위해서 그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불교계는 교세 확장에도 등한시하는 것은 물론 헌법 질서가 무너지고 있어도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불교계가 이번 기회에 무속을 척결하고 헌법을 수호하는 일에 적극 동참한다면 불교가 진정한 ‘호국불교’로 온 국민에게 인식되면서 여러 종교 중에서 가장 믿음직스러운 종교로 우뚝 설 것이다.
배길몽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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