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사회 내부는 양분되어 극심하게 혼란하다. 또한, 나라 밖의 세상은 AI시대의 주도권을 놓고 열강들의 싸움이 격화되고 있다. 인류사회 전체가 커다란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도 문명사적인 관점에서 해결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불기 2569년에 맞이하는 부처님오신날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AI시대에는 수행문화가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핵심 열쇠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20년 후 서기 2045년은 미래학자들이 예견한 특이점 시대가 도래하는 때다. 20년이란 시간은 인류문명사의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짧은 기간이지만, 인류의 문명이 획기적으로 전환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을 담고 있다. 여러 글에서 강조했듯이, 특이점 시대 이후에 변화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AI시대에 생존능력을 높이는 유일한 방법은 생활수행을 통해 의식 수준을 높이는 데 있다.
수행도 인연법에서 예외가 아니다. 초기 불교시대에는 수행에 관한 일반의 관념이 없었기 때문에, 부처님은 사람의 근기에 맞게 설법을 했다. 부처님 열반 이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불교수행은 여러 단계를 거치며 시절인연에 맞게 변화해왔다. 지금은 모든 경전의 내용과 천차만별의 수행법이 일반에 공개되어 있다. 하지만 전승 과정에서 이해관계나 관점의 차이로 곡해(曲解)가 있었다. 세상이 어지러운 이유 중의 하나는 사람들에게 진리의 바른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리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세울 때가 되었다. 진리에 이르는 길은 무궁무진하지만, 올바른 도리는 모든 현상을 하나로 통섭하는 법이다.
부처님은 열반에 들기 전에 미래사회의 상황을 예견하고 한 가지 분명한 기준을 제시했다. “스스로 지혜를 밝히고, 진리의 광명에 의지하라(自燈明, 法燈明).” 지금 상황에서 이 말씀은 AI시대를 대비하는 말씀처럼 느껴진다. 모든 정보가 연결되는 융합시대에는 모든 성인의 말씀도 예외 없이 하나로 융합될 것이다. 이때 AI를 악의적으로 활용해서 사회의 여론을 호도하려는 세력도 있을 수 있다. 어리석은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진리에 대한 바른 식견을 가져야 한다. 이 점에서, 보편윤리도덕을 함양하는 수행문화는 더욱 필요하다.
AI시대에는 바른 도덕으로 자신의 중심을 확고히 잡고, 진리에 의지할 때만이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AI를 지배하는 세력에 의해 자신의 삶이 좌우될 수 있다. 앞으로 인류는 AI를 활용하는 인간과 AI에 의해 활용당하는 인간으로, 크게 두 부류로 나뉠 수 있다. 전자는 소수이고, 후자는 다수일 확률이 높다.
인류사회는 물질이 세상을 지배하는 세상에서, 정보가 세상의 흐름을 주도하는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정보의 질이다. 생명이 없는 물질과 관념의 단편적인 지식정보는 이제 쓸모가 없다. 부분을 꿰어서 생동하는 유기체로 만드는 총체적인 지혜를 주는 정보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이 점에서, 앞으로 불교는 인간의 깊은 지혜와 통찰력을 함양하고 의식상승을 견인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하는 시대적 사명이 있다. 불교가 기복종교에 머문다면, 미혹된 정신을 깨우는 종교의 본디 기능이 마비될 수 있다. 수행종교의 본래면목을 회복할 때만이, 불교는 미래종교로서 빛을 발할 수 있다.
의식을 높이는 쪽으로 AI를 제대로 활용한다면, 앞으로 수행문화가 크게 부흥하게 된다. 이 기회를 한국불교는 놓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앞서 여러 글에서 생활불교수행의 입장에서 불교진흥의 여러 방법을 제안했다. 그 핵심은 절이 단순한 기도처에서 탈피해서, 지혜를 개발하고 자비를 실천하는 진정한 도량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기도와 수행은 적당히 균형을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다. 소원은 연기적 상황이 맞으면 저절로 이루어진다. 연기법을 무시하고 기도만 한다고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얘기하면, 불법(佛法)을 위배할 뿐만 아니라 사회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무거운 죄를 짓게 된다. 이상적인 기도의 모습은 기도가 사회 전체를 하나로 연결하는 자비수행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개인의 안위와 번영을 위한 기도에서 전체 생명의 소통을 이루는 기도로 바뀌게 된다.
한편 지혜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자신을 살리는 자기중심적 지혜와 우리 모두를 살리는 보편적 지혜가 있다. 자기중심적 지혜는 개인의 근기에 맞는 일시적인 지혜이고, 보편적 지혜는 모든 생명을 아우르는 영원한 지혜다. 부분적인 지혜에서 완전한 지혜로 확장하는 데 필요한 덕목은 자비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지혜와 자비의 두 길이 있고, 수행 인연에 따라 두 길 중 어느 한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는 단계에 접어들면, 지혜와 자비는 하나로 융합된다. 완전한 지혜는 자비로 완성된다.
바른 지혜는 수행과정에서 삿된 길에 빠지는 것을 막는다. 그러나 어설픈 지혜는 오히려 스스로 경계를 세우고, 그 안에서 자기만의 독선에 빠지게 만든다. 이럴 때 독선을 방비하는 것이 자비수행이다. 자비는 자기중심의 깨달음에 탈피해서, 온 생명을 아우르는 일체종지(一切種智)의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생명력을 갖고 있다. 자비와 지혜는 서로 상호보완작용을 하며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는 쌍두마차의 역할을 한다.
부처님은 지혜와 자비의 두 길을 통해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렀다. 요즘 세상이 어지러운 이유는 마른 지혜만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생명의 에너지가 없는 마른 지혜는 분리할 수 없는 생명의 망을 자기중심적으로 나눔으로써 생명공동체의 질서를 파괴하고, 결국 자기 자신도 파멸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된다.
일상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비수행은 바른 도리에 맞는 생각, 말, 행동을 베푸는 일이다. 큰 봉사만이 자비수행은 아니다. 오히려 거창한 봉사는 어떤 목적이 있고,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할 수도 있다. “먼 곳의 사랑은 가까운 곳에는 원한이 된다.”고 한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의 말이 여기에 해당한다. 가까운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고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기부하는 일은 인류애를 과시하는 일종의 광고행위에 불과할 수 있다. 먼저 우리 주변을 살리고, 그 생명의식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 사회가 무너지면, 어떤 자선 행위도 의미를 상실한다.
수행을 망치는 것은 각자의 아집(我執)이다. 아집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것은 법집(法執)이다. 자신이 믿는 진리가 유일한 진리라고 집착하는 순간, 진리에서 완전히 멀어진다. 진리는 영원하지만, 세상에 투영된 진리의 현상은 매 순간 변하고 있다. 따라서 진리라고 생각하는 어떤 관념은 영원히 변하는 실체를 담을 수 없다. 자신만의 편파적인 진리로 사람들을 인도하면,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함께한 모두를 파멸시키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와 관련해서 곱씹어볼 말이 있다. 에머슨은 “도둑은 자신에게서 훔치는 것이고, 사기꾼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라고 정곡을 찔렀다. 이 말은 수행자에게도 그대로 해당한다. 수행을 통해 뭔가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도둑과 사기꾼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사유(私有)할 수 없는 진리를 자기식으로 전유하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도둑이자 사기꾼이 되는 것이다.
수행은 어떤 것을 얻는 과정이 아니라, 자유로움을 이르는 길이다. 여기서 자유로움은 생명의 소통이 막힘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자유로움은 자신의 독선을 비우고 경계를 허물 때, 스스로 찾아온다. 얻으려 하면 할수록 더 멀어지는 것이 대자유의 진리다. 따라서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항상 성찰할 필요가 있다. 만약 자신이 얻은 지혜가 독선과 분열을 조장한다면, 그것은 마른 지혜일 뿐이다. 마른 지혜에 생명을 부여하는 요소는 자비다. 자비는 일상의 평범한 삶 속에서 생명의 조화를 이루는 일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의식상승은 다양한 삶 속에서 조화를 이룰 때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 일체중생을 품어 안는 생명의식이 없다면, 의식상승은 생태적 질서를 파괴할 뿐이다. 이 점에서, 생활수행은 개인의 다양성과 공동체의 통일성이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생활수행은 인공지능사회를 온전하게 유지하는 유일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부처님이 말씀한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은 지금 우리 사회의 상황에서 그 의미가 더욱 깊다. 또한, 그 말씀의 의미를 AI시대의 연기적 상황에서 반추해볼 필요가 있다. 부처님 말씀의 가장 이상적인 실현은 스스로 자신의 스승이 되는 것이다. 타인에게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자립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바른 도리에 따라서 자신의 의지와 지혜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면, 삶의 다양성이 살아난다. 개인의 다양성이 확보될 때, 사회가 극단으로 치우치는 것을 예방하고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하다.
인류역사를 보면, 문명의 큰 변동이 있을 때마다 사회가 극단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우리 사회가 지금 그런 양상을 띠고 있다. 많은 사람이 집단의 광기에 함몰되면 극히 위험하다. 이때 특히 종교가 정치와 결합하면, 혼란은 극을 이루게 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종교와 정치가 결탁한 시대는 극심한 혼란기였다. 종교는 정치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둘 때, 사회를 맑게 정화하는 역할을 지속해서 할 수 있다.
모든 것은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다. 불법의 이치에 따라 바른 정신으로 바른 삶을 살 때, 우리는 바른 도리를 증득하게 된다. 부처님은 지극히 상식적인 말씀을 했다. 우리가 불법을 어렵게 느끼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비상식적인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 부처님오신날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상식과 양심을 회복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기본 정신으로 돌아가, 모든 사찰이 수행의 도량으로 거듭나야 한다.
■서동석 박사는
고려대학교 대학원 영문학과를 졸업(문학박사)했고, 현재 에머슨하우스 교육연구소 소장이다. 서남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재)대상문화재단 이사 겸 동천불교문화재단 상임이사 겸 반야연구소 소장, 고려대학교, 광운대학교, 단국대학교 강사 등을 역임했다. AI시대 융합문명사회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인간교육과 수행에 관한 집필과 연구개발을 주로 하고 있다.
*수행문화, 인간교육 특강/컨설팅 문의(eastosuh@daum.net)
http://www.bulgyonews.co.kr/news/38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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