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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에 올라
천왕봉에 올라
허덕이며 오르던 고갯마루 신라 고찰 법계사 부처님 열기를 식힌 눈으로 산천경계를 보라 이르신다 세석평전 꽃빛은 철쭉제 인파로 더 붉게 타는데 여물물소리에 휘파람새 선잠을 깨고 앞지를 것 없노라며 흰구름 유유하게.. 이한규 (03/21)
입춘
입춘
남녘에선 홍매가 피었다는데 언제일꼬 기다리던 녹색의 향연 뒤늦은 햇살은 이제야 산허리로 다가와 버들개지 영롱한 움을 틔운다 달래 무침 냉이국에 봄이 묻어 있었다 이한규 (02/21)
만날재
만날재
겨자씨만한 미움 한 톨도 다 걷어낸 후엔 만날재로 오시게 잊혀져간 흔적도 써레질하며 너덜겅 굽이쳐간 산자락 돌아서 오시게 평행선으로 닿지않아 절름발이가 된 그리움 흰 갈대가 늙은 손을 흔들고 구절초 꽃빛이 너무도 고와 눈물 마.. 이한규 (01/23)
동지무렵
동지무렵
노루 꼬리만큼 남은 햇살이 아쉬워 저마다 붉어진 조각 볕을 안고 춤추는 흰 빨래들 정강이가 시려오는 동지 무렵엔 눈물 몇 줄기 흘려서 겨울 강으로 보낸다 인경(人定)도 지난 시간 어느 쪽으로 머리를 두고 잠들어야 하는지 갈등하는 .. 이한규 (12/26)
자화상
자화상
내 안에 없는 너를 찾으러 등불도 없는 강가에 나갔더니 물살에 채인 북극성 하나가 산산이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이한규 (11/21)
사리암에서
사리암에서
지치고 목쉬는 날이면 선사(禪師)들이 펼치고 간 솔 깊은 계곡을 찾아 촛불을 밝히며 법당에 앉는다 나를 밝히는 참회의 층계를 오르며 기도는 구천개의 인등으로 빛나고 이한규 (10/24)
밤소묘
밤소묘
어둔 풀 속에 엎디어 시름처럼 울던 풀벌레 서녘 하늘에 닿아 바람에 떨던 영혼의 종소리 이한규 (09/20)
어느 날
어느 날
하늘이 보이지 않는 숲에 누워 떠도는 것 모두를 잠재우고 싶은 날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 무정한 폭포가 울고 버선목을 뒤집듯 마음 속 더듬어 보는 일이 아픈 날 이한규 (08/23)
진불선원
진불선원
메타세콰이아 늘어선 용호동 숲 그늘에 묻혀 초록빛 향기를 맡으며, 선방(禪房) 가는 길은 그래서 편안하고 한적하다. 이한규 (07/25)
유월哀
유월哀
짙어오는 햇살따라 생각이 한 켜씩 깊어지는 하오 부엉이 울음 속에 다복다복 밤꽃이 피고 더 많이 태우고 난 후에야 가장 맑은 눈물을 뽑아 물머리를 틀며 흐르던 유월 강 언저리 이한규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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